감 놔라 배 놔라!
추석에 조상님께 제사를 모시는 일은 대대로 이어온 조상숭배의
전통적 민족문화로서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 유산으로 등록된 조선조
역대 임금과 왕비의 위패를 모시던 종묘의 엄격한 제례처럼
신분에 관계없이 집집마다 제사의식은 장중하고 엄격하였으나
갈수록 급변하는 시대조류에 따라 격식도 무엄(無嚴)해진 중구난방이요
제사상(祭祀床) 상차림의 지극정성 역시 그저 하나의 옛 문화일 뿐!
원근(遠近)의 일가친척들이 모두 모여 조상의 음덕을 새기며
햇곡식과 햇과일 등을 함께 먹으면서 오순도순 훈훈한 가족애를 느끼며
끈끈한 정(情)을 나누던 잔치적 옛 제사는 정녕 사라져버린 것인가?
따라서 조율시이(棗栗柿梨), 좌포우혜(左佈右醯), 동두서미(東頭西尾) 등등….
추석을 맞아하여 점점 한 점, 점으로 사라지고 잊혀져가는 옛 선조들의
제사 용어 중 기본이 되는 조율이시(棗栗梨柿)에 담긴 깊은 뜻을 헤아려본다.
조율이시(棗栗梨柿), 바로 대추(棗)와 밤(栗)과 배(梨)와 감(柿)을 말함인데
진설자의 위치에서 맨 좌측부터 차례로 차려 놓는데 왜 대추(棗)가 첫째인가?
그것은 대추의 씨는 단 한 개로서 해도 하나 달도 하나 나도 하나 너도 하나
곧 하나 뿐인 임금님과 하나 뿐인 부모님에 대한 충효정신이며
나아가 어디서나 ‘온리 원 only one’이 되라는 처세훈이요
또한 대추처럼 주렁주렁 대대손손 자손이 번성하라는 뜻이 아니리요.
두 번째, 밤(栗)은 씨가 세 개로서 삼정승(三政丞)을 상징하며
또한 밤톨은 싹이 트고 큰 나무로 성장해도 원뿌리(原根)에 붙어사는데
이는 혈맥(血脈)으로 이어진 끈끈한 혈연(血緣)을 뜻함이요
세 번째, 배(梨)는 씨가 여섯 개로서 육조(六曹)판서를,
네 번 째, 시(柿)는 감 씨가 여덟 개로서 8도 관찰사를 뜻하며
고욤나무에 접목을 해야만 좋은 감이 열리듯 교육을 접목, 인재를 육성하여
자손 중에 그런 벼슬에 오르기를 염원한다는데 여기서 왜 “감 놔라 배 놔라!”냐
그것은 조상 중에 육판서를 지낸 가문에서는 배를 먼저 진설해야 맞다하고
8도 관찰사를 지낸 가문에서는 감이 먼저가 맞다하며
조율이시(棗栗梨柿)냐 조율시이(棗栗柿梨)냐?
집집마다 각각 제사풍습이 달라 ‘가가례(家家禮)’라 했거늘
아무 상관도 없는 남의 집 제상에 “감 놔라 배 놔라!”
상다리가 부러질 만큼 산해진미를 차려놓고 “차린 것은 없지만 흠뻑 흠향하소서!”
사후에 만반진수(滿盤珍羞)는 생전에 불여 일배주(一杯酒)만도 못하느니라.
조상님이 웃고 계신다. “나도 생전에 그랬다고---.”
“하하하! 호호호!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