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즐거운 몽골여행 제5부
오늘은 수흐바토르(Sukhbatar) 광장과 몽골 정부청사 그리고 간단사원을 거쳐
몽골 마사지 체험 코스에 따라 조식朝食은 호텔식으로 간단히 때우고
시내를 관통하는 도심의 강변길을 따라
동서로 피스 애비뉴(Peace avenue.평화의 거리)가 뻗어 있고,
남으로는 토라 강(江)이 흐르는 몽골수도의 중심부에
몽골혁명의 아버지 수흐바토르가
1921년 7월 10일 몽골 인민정부를 수립한 것을 기념해
1946년 7월 11일에 그의 동상을 세우면서 붙여진 이름인
웅대한 ‘수흐바토르 광장’에 도착했다.
정부종합청사 건물 중앙에는 칭기즈칸 탄생 800주년을 기념해서 제작했다는
웅장한 칭키즈칸 좌상坐像과 좌우 양쪽에는 말 탄 기병이 호위하고 있고
맨 끝에는 칭기즈칸의 책사 야율초재의 좌상이 있다.
몽골은 어디를 가나 처음과 끝이 칭기즈칸이다.
그 시절 유목민들은 모든 것을 함께하는 리더를 갈망하고 있었단다.
가도 가도 끝없는 척박한 고원의 사막지대에서 가축을 따라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오직 생존을 위하여 극심한 추위와 배고픔과 더위를 견뎌야 했던 그들에게
결코 이룰 수 없을 것 같았던 원대한 꿈과 희망을 제시하고
언제 어디서나 부하들과 똑같은 환경에서 먹고 자고 입고 나누며
생사고락을 함께한 진정한 리더가 칭기즈칸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오직 절망에서 희망을 보여 준 칭기즈칸에 대한 믿음 하나로
그 모진 모래바람과 눈보라를 헤치며 말발굽 소리에 굶주림도 목마름도 참아가며
아시아를 넘어 유라시아 대륙까지
산 넘고 물 건너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고 넘어 민족의 피나는 삶과 정신을
총체적으로 응집시켜 세계 최대의 몽골 대제국을 이룬 영웅 칭기즈칸의 대서사시!
그것은 드넓은 초원에서 혹독한 자연환경을 극복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 도전정신의 극치였지만
칭기즈칸이 경고한 어록에 의하면
“내 자손들이 비단옷을 입고 벽돌집에 사는 날, 나의 제국은 망할 것이다”
그래서 그랬을까?
산해진미·진수성찬의 맛있는 음식과 비단이불에 안락한 잠자리에 안주하며
바깥세상과 성城을 쌓는 날부터 그들의 존재감은 사라져버렸으니
아, 칭기즈칸의 무한질주도 한낱 물거품이었구나.
무릇 세상만사 영원한 것은 없나니 흥망성쇠興亡盛衰,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한편, 정부청사 광장 한 가운데엔
몽골의 혁명가로써 칭기즈칸 다음으로 국부로 추앙받고 있는
수흐바타르(Sukhbatar) 장군의 기마 동상이 우뚝 서있는 바
1921년 당시 소련을 추종하는 세계 2번째인 공산주의 국가인 몽골 독립을 선포하고
따라서 울란바토르라는 수도 이름도 수흐바타르를 기리기 위하여
몽골어로 ‘붉은 영웅’이라고 명명命名 했단다.
그러나 추종했던 공산국가의 종주국인 소련이 해체되던
1992년 공산주의 국가를 탈피하고 시장경제와 자유무역을 표방하는
대통령중심제로 신헌법을 제정하고
몽골 정부가 칭기즈칸을 국가 브랜드로 지정함과 동시에
‘수흐바토르 광장’ 이름도 ‘칭기즈칸 광장’으로 개명하고
2006년도에 칭기즈칸 즉위 800주년 기념으로 건축한 국회의사당 입구 중앙에
양팔을 벌린 채로 천하를 호령하던 칭기즈칸의 청동상을 세웠으니
몽골은 역시 “지금도 칭기즈칸 전성시대”가 분명하다.
필자가 물었다.
“영웅이여! 지금 무슨 생각을 하시나요?”
“⚋⚋⚋”
묵묵부답인 영웅을 뒤로 한 채 우리일행은 울란바토르 시내에 위치한
몽골 라마불교의 총 본산인 ‘간등사원’을 향하여 “출~발!”
몽골의 척박한 땅과 기후 등 지리적 환경은 자연숭배를 비롯한 조상숭배나
천신숭배 같은 샤머니즘을 비롯한 전통신앙을 낳아
산 정상이나 높은 언덕에 정령精靈이 산다고 믿고
우리나라 성황당처럼 바로 그 자리에 돌 등을 쌓고 시계방향으로 세 바퀴를 돌며
소원을 비는 ‘어워’ 등 다양한 종교의 나라지만
몽골의 인구 90% 가량이 라마불교를 믿는데
이는 칭기즈칸의 손자인 쿠빌라이칸이 불교의 나라 티벳트를 점령한 후
찬란한 불교문화가 꽃을 피었으나
소련의 스탈린 시대에는 2만 여명에 달하는 승려가 체포, 구금, 처형을 당했고
800여 개의 사원이 훼철되는 종교적인 탄압 속에서도 법회를 열고
유일하게 살아남아 몽골역사와 같이하는 간등사원은
1996년도에 높이가 26m에 달하는 거대한 청동 불상이 완성되어
한 때는 5천명의 승려가 머물었던 대 사원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는데
우리일행 중 문학박사이자 서예가로써
2015년도 장성군민의 상 문화예술부분 수상자인 농헌農軒 김홍식 선생이 즉석에서
비단 같은 시조 한 수를 뽑았는데
“심외무불心外無佛”
나약한 인간들이 어찌 알꼬 심외무불/
텅 비어 갈 곳 없는 번뇌 속 중생이여/
하룬들 절간 없으면 못 살까나 고해苦海라.
필자가 답하여 가로되
“극락이 어디 있느뇨?”
죽어서 간다는 극락은 내 알 바 아니요/
오직 숨 쉬는 이 순간, 즐거움 속에 신간 편하면 극락이요/
괴로움에 울면 바로 그 곳이 지옥이라네.
그렇다! 오늘도 구경 잘 하고 잘 먹고 잘 놀고
몽골 전통 마사지 체험까지~ 햐! 극락이 따로 없구나.
“하하하! 호호호! 하하하!”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