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녀 뱃사공
- 윤부길 작사, 한복남 작곡 , 황정자 노래 -
♬ 낙동강 강바람이 치마폭을 스치면 군인 간 오라버니 소식이 오네
큰 애기 사공이면 누가 뭐라나 늙으신 부모님을 내가 모시고
에헤햐~데헤야 노를 저어라 삿대를 저어라~~
때는 6.25 전쟁 휴전협정이 끝나고 불과 몇 년 만인 1959년 9월!
전국을 떠돌며 노래, 춤, 악기연주, 만담 등으로 삶에 지친 대중들에게
웃음과 재미를 선사하였던 유랑극단의 단장인 윤항기·윤복희의 부친 윤부길씨가
정자 아래 남강이 흐르고, 넓은 들판이 한눈에 들어오는 절경으로
중국의 명승지인 "악양"의 이름을 따서 조선 철종 8년(1857)에
함안군 대산면 악양마을 절벽에 세워진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의 악양루岳陽樓 나루터에서 배를 타고자 했으나
어느덧 해는 저물어 더는 갈 수 없게 되자
떠돌이 극단생활로 찌든 일행은 노독을 풀 겸해서
전쟁과 가난으로 폐허처럼 변했으나 평화롭기 그지없는
나루터 뱃사공의 집에서 하룻밤을 머물기로 했는데
군에 입대한 뱃사공 아들인 오빠(박기중·6·25 전사)를 대신해서
두 처녀가 낙동강 강바람에 치마를 휘날리며 교대로 노를 저으며
소식이 끊긴 오빠를 애타게 기다리는 23세의 언니 박말순씨와
18세 동생 박정숙씨의 애절한 사연을 듣던 윤단장이
그 후 몇 년이 지난 후. 그 때 그 처녀뱃사공을 잊지 못하고
‘낙동강 강바람에,,,,,’란 노랫말을 지어 1959년 한복남 씨에게 작곡을 의뢰해
당시 최고의 가수 황정자의 노래로 탄생시킨 불후의 명곡 ‘처녀 뱃사공’
이것은 실화다.
꽃다운 나이에 생계를 위하여 어쩔 수 없이 노를 저어야만했던
처녀 뱃사공 언니는 일찍 세상을 떴고 동생 역시 아무도 모르지만
경쾌하면서도 어딘가 애잔한 느낌이 스며드는 국민 애창곡 처녀 뱃사공!
함안군은 악양루의 빼어난 경치와 ‘처녀 뱃사공’ 의 탄생배경으로
2000년 10월 2일 함안군민의 날에 노래비 제막식을 가졌으니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고 했던가.
사람은 가고 노래는 남아 지금도 가끔 ‘kbs 가요무대’의 단골가요로^^^
지난 해 가을(2018년 10월18일) 악양루의 가을 햇빛과 청량한 바람소리는 물론
드높은 파란 하늘도 절경, 두둥실 떠도는 힌 구름도 절경, 국화도 갈대도 황금빛 들녘도
모두 예술이요 절경이었던 장성문화원의 문화탐방의 추억 속 사진도 절경!
“하하하! 호호호! 하하하!”
사진 : '처녀 뱃사공' 노래비 앞에서 팔자좋은 필자의 근영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