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 헤는 밤 선거가 치러지는 곳곳마다 열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찍을 사람을 찾아 벽보속의 면면을 다 살펴보았습니다. 공약 속에 헛공약 거짓부렁 말을 이루 다 못 밝힌 것은 너무 달콤한 꾐에 빠짐이요, 한낱 정에 끌린 때문이요, 차마 얽힌 인연을 다 끊지 못한 까닭입니다. 표 하나에 눈물과 표 하나에 웃음과 표 하나에 간절함과 표 하나에 운명과 표 하나에 삶과 표 하나에 여러분, 여러분, 여러분, 나는 표 하나에 웃고 울며 말 한 마디씩 불러 봅니다. 운동할 때 표밭을 함께 갈던 참모들의 이름과, 일가친척 사둔 네 팔촌까지 이런 혈연血緣들의 이름과, 벌써 옛날이 된 학교 학연學緣들의 이름과 후원금을 보내준 지연地緣들의 이름과, 너구리, 원숭이, 괭이, 박쥐, 철새, ‘sns’, ‘리서치 갤럽’ 이런 익숙한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언제나 함께 있습니다. 꿩이 콩밭에만 맘 있듯, 당선자, 그리고 낙선자 우린 오월동주吳越同舟입니다. 나는 꿈속에서 꿈꾸며 그 숱한 사람이 찍은 투표지에 눈 부릅뜨고 내 이름 찾다가 차마 눈을 감아버렸습니다. 실은, 내게 찍힌 표가 적어서 부끄럽고 창피해 볼 수 없는 까닭입니다. 먼 훗날 ‘헛되고 헛되어 모두 헛되다’ 철이 들면 두 번 다시 선거 출마할 생각을 접고 나 죽어서 눈에 흙이 덮일 때 구름처럼 둥둥 떠다닐 게외다. 주) : 2018년 6.13 지방선거를 바라보며 윤동주(尹東柱 1917∼1945) 시 ‘별 헤는 밤’ 패러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