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지막 종적蹤迹 신후지지身後之地 아주 오랜 옛날부터 양반가문의 선비들은 대개 40대 불혹의 나이가 되면 살아생전에 죽으면 묻힐 묏자리 등 두 군데의 쉴 자리를 잡아두었다는데 첫째는 나이 들어 벼슬에서 물러난 후 산자수려한 터를 잡아 음풍농월하며 여생을 편히 쉴 퇴후지지退後之地요 둘째는 사후에 들어갈 묘墓인 신후지지身後之地가 바로 그것인바 1934년생으로 우리고장 동화면이 탯자리이며 89년 수해 당시 제27대 장성군수를 역임하셨던 조항규(당 81세) 전 군수님께서 퇴직공무원 단체인 장성군지방행정동우회에 들려 회장인 필자에게 “김 회장! 오늘 날씨도 참 좋은데 드라이브나 갈 까?” “아 그러시죠. 그런데 어디로 갈까요?” “내가 가자는 대로만 가세!” 그리하여 논길 · 밭길 · 산길을 돌고 돌아 두 개의 봉분 묘지가 조성된 어느 양지바른 곳에 이르러 “여기가 바로 내가 들어갈 자리라네” “과연 명당을 잡으셨군요. 하하하!” “그렇지? 껄껄껄!” 사후에 들어갈 당신의 묏자리를 스스로 찾아 두 내외분의 봉분까지 나란히 조성하였으니 더 이상 무엇을 더 바라겠냐며 만감萬感 회억回憶 속에 봉분을 어루만지며 흐뭇해하시는 당신! 그 때가 언제일지는 몰라도 누구에게나 있을 최후는 언제일까? 최후의 순간에 이르러 왜 무엇 때문에 그토록 그 뭔가를 찾아 헤맸던가? 찍소리 한번 못하고 사라질 운명인 것을 ……. 다행히 나는 세상을 떠날 때 아무런 대가없이 꺼져가는 생명을 위하여 사랑의 장기기증 운동본부에 나의 모든 신체를 기증하였으니 죽어도 또 다른 생명으로 부활(?)하지 않겠는가? 따라서 신후지지는 남의 일이니 거기에 투입될 여력을 모아 내가 살아있을 때 내 이웃이 나의 작은 존재감이라도 느낄 수 있도록 밥이라도 한 그릇 더 사야겠다고 스스로 다짐해 보며 공무원으로써 군수에 이르기까지 큰 족적足跡을 남기고 마지막 종적蹤迹을 감출 유택幽宅까지 마련하신 당신께 미리 조문인사 올립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기원 하나이다” “하하하! 호호호! 하하하!”
벌써 26년전 일이네요.
우와 세월 참 빠르다 빨라~~. 그 때 난리가 아녔제. 사람도 죽고 떠 내려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