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군(군수 김한종)이 주최하고 필암서원산앙회(이사장 김재수)가 주관한 ‘2026 문불여장성 과거시험 재현’ 행사가 전남광주통합특별시민의 높은 관심 속에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지난 3일 과거시험을 치른 데 이어 10일에는 학술대회와 입상자 시상식, 전통문화 축하공연이 열렸다. 이번 행사에는 옛 광주권과 전남권 명문 고등학생 70여 명이 고루 참가했으며, 유네스코 세계유산 ‘한국의 서원’ 9곳 관계자 20여 명을 비롯한 전국 각지의 유림도 필암서원을 찾아 참관하는 열의를 보였다.
장성군은 예로부터 호남을 대표하는 문향(文鄕)으로, 조선 시대 대과 급제자이자 호남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문묘에 배향된 성리학자 하서 김인후 선생(1510~1560)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필암서원을 중심으로 20년 넘게 한시백일장에 이어 한글백일장을 꾸준히 개최해 왔다.
지난해 장성선비학당 박래호 학장이 선비정신 확산을 위해 기존 백일장을 과거시험으로 확대 운영하자는 방안을 제안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이후 장성군과 필암서원은 세계유산의 위상에 걸맞은 과거시험 재현행사를 구상해 왔다. 특히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출범을 계기로 지역의 새로운 도약을 뒷받침할 정신적 구심점을 마련하고자 ‘문불여장성’을 브랜드로 내건 새로운 인문학 축전을 창설하게 됐다.
이번 과거시험은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다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을 기본 취지로 삼았다. 단순히 옛 시험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의 세대가 선현들의 지혜와 인문정신을 되새기도록 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특히 하서 선생의 도학과 절의를 재조명하고 필암서원의 역사적 전통을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데 의미를 뒀다.
행사 준비에는 기획과 홍보를 포함해 1년 남짓한 시간이 소요됐다. 약 한 달 반 동안 온라인으로 응시 원서를 접수한 결과, 당초 기대를 웃도는 137명이 등록했다. 개천절인 10월 3일 실제 시험에 응시한 인원도 113명에 달해 82%의 높은 응시율을 기록했다.
시험은 강독·한시·책문 등 세 분야로 나눠 실시됐다. 강독과 한시는 주로 장년층과 노년층이 선호하는 과목인 데 비해, 책문은 청소년의 논리적 사고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평가하는 과목으로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했다. 그 결과 85세 할아버지와 16세 손자가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시험을 치르는 이색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세대를 아우르는 과거시험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더했다.
강독은 사서삼경의 한 대목을 암송하는 구술시험으로 시행했고, 한시는 ‘세계유산 필암서원’을 시제(詩題)로 제시해 현장에서 칠언율시를 짓도록 했다. 책문은 조선 시대 대과의 최종 관문이었던 시험 방식을 응용해 논술형 시험으로 진행됐다.
이처럼 전통적인 과거시험의 형식을 살리면서도 세대별 특성을 고려해 시험 과목을 구성한 점은 이번 행사의 차별화된 특징으로 평가된다.
성적 우수자로 선발된 입상자 18명의 연령과 거주지를 살펴보면 세대와 지역 간 조화가 돋보인다. 연령별로는 70대가 7명으로 가장 많았고, 10대 6명, 60대 3명, 50대와 80대가 각각 1명으로 나타났다. 지역별로는 강독 입상자 6명 중 4명이 옛 전남권 거주자인 반면, 한시 입상자 6명 중 5명은 옛 광주권 거주자로 집계됐다. 강독과 한시 분야에서는 광주향교, 광양향교, 광양 이화학당, 장성선비학당에서 입상자를 배출했다.
고등학생 6명이 입상한 책문 분야에서는 광주 고려고등학교가 장원과 장려상을, 전남외국어고등학교가 우수상과 장려상을 각각 차지했다. 광주 살레시오고등학교와 대동고등학교에서도 각각 1명의 입상자가 나왔다.
다만 여성 응시자의 높은 참여율에도 불구하고 강독과 책문에서 각각 1명씩, 모두 2명만 입상해 성별 균형 측면에서는 아쉬움을 남겼다.
심사는 분야별로 대학교수와 관련 전문가 3명씩을 위촉해 진행했다. 심사위원은 전남광주와 다른 시도 출신을 균형 있게 안배했으며, 1박 2일간 합숙 심사를 실시해 공정성과 보안 유지에 만전을 기했다.
한편 이날 오전 필암서원 집성관 강당에서는 ‘과거제도의 재조명’을 주제로 학술대회가 열렸다. 세계유산 ‘한국의 서원’ 관계자와 유림 지도자 등 12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조선 시대 과거제도의 공과와 하서 김인후 선생의 과거관, 장성 지역 과거급제자의 특징 등을 조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