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나라사랑 인물 기삼연 선생
2월의 나라사랑 인물 기삼연 선생
광주지방보훈청, 우리고장 출신 선정
  • 장성뉴스
  • 입력 2013.02.01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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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지방보훈청(청장 안중현)은 광복회 광주전남연합지부와 함께 우리고장 출신 2월의 나라사랑 인물로 전남 장성 출신 『호남창의회맹소 의병대장 기삼연 선생』을 선정하였다.

1851년 전남 장성 황룡에서 진사 기봉진의 4남으로 태어난 선생은 어려서부터 한학과 도학을 공부한 선비였다. 특히 호남의 거유이자 위정척사사상의 태두인 노사 기정진의 문하에서 수학하며 민족의식을 키웠다.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 계기로 각지에서 의병 봉기가 일어나자 1896년 2월 토적복수를 내걸고 장성에서 봉기하여 광주에서 기우만․고광순과 합세함으로써 의병항쟁의 기세를 크게 떨쳤고, 러일전쟁 직후 「을사조약」과 「정미7조약」의 체결로 국망의 상황이 가시화되자 1907년 음력 9월, 호남지역 의병부대를 규합하여 연합 의병 지휘부인 ‘호남창의회맹소’를 결성하였다.

이를 이끌고 1907년 10월 고창 문수사 전투에서 일본군을 크게 무찔렀고, 12월 7일에는 영광 법성포를 탈환하여 일제의 식민기관과 일본인 가옥을 불태우는 등 큰 전과를 올렸다. 법성포 전투 이후 호남창의회맹소는 일제의 추격을 피해 의병부대를 나누어 활동하였다.

이듬해 1월, 300여명의 의병부대를 이끌고 담양 금성에 도착하여 대오를 정비하던 중, 일본군의 기습 공격을 받았는데, 계속된 전투로 인한 피로와 혹한으로 인해 대패하고 말았다. 금성전투 직후 은신처가 탄로나 설날 아침 일본군에게 피체되어 광주로 호송되었고, 결국 이튿날 광주 서천교 백사장에서 피살되어 58세의 나이로 순국하고 말았다.

그러나 선생의 순국은 호남의병들에게 자극제가 되어 더욱 왕성하게 발전하였다. 호남창의회맹소를 결성하였던 수하의 김준․김용구․전수용․이석용․ 심남일․박도경 등은 물론, 안규홍․강무경․양진여 등 평민 의병장들이 나타나 이후 호남을 의병항쟁의 중심지로 부상시켜 갔던 것이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고, 장성군 장성읍 장성공원 내에는 ‘호남창의영수 기삼연 선생 순국비’가 건립되어 있다.

광주지방보훈청에서는 광복회 광주전남연합지부, 625참전유공자회광주지부, 전라남도지부와 공동으로『2013년도 우리고장 출신 이달의 나라사랑 인물』19명을 선정하여 매월 우리고장 출신 이달의 나라사랑 인물에 대해 공훈과 업적을 출신 고장 등 이 지역에 집중 홍보하고, 유족 위문, 나라사랑 인물과 관련한 현충시설 탐방 및 정화활동, 학생 봉사활동, SNS를 활용한 이벤트 등을 실시하여 지역민에게 이 분들의 나라사랑 정신을 본받고 보훈의식이 확산되도록 할 계획이다.

▲기삼연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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