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암 변이중 선생이 제작해 행주대첩의 가장 큰 공을 세운 것으로 알려진 화차가 420년 만에 복원돼 첫 시연회를 갖는다.
오는 28일 오전 10시 30분 장성 동화면 육군포병학교 훈련장에서 김양수 장성군수를 비롯해 유관기관단체장과 포병학교 군인, 문중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복원화차 발사시연회를 개최한다.
봉암서원(이사장 변온섭)에서는 망암선생 서거 400주년을 맞아 지난해부터 망암화차 복원 계획을 세워 전라남도와 장성군의 지원으로 전쟁기념관 박재광 박사 등 고 무기 전문가들의 자문과 철저한 고증을 통해 화차를 복원했다.
이에 지난 10월 중순에 복원된 망암화차는 국방연구소와 육군기계화학교 진원 사격장에서 최장 300미터의 목표물에 정확히 적중하는 실험발사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화차의 정면에 장착된 14개의 승자총통은 화약심지로 연결돼 3초 간격으로 발사되며, 승자총통 한 개에서 발사된 탄환은 15알로 40초 동안 210여 알의 탄환이 발사된다.
변온섭 이사장은 “420여 만에 고증에 의해 복원·제작된 화차의 실험발사에 성공함으로써 행주대첩에서 선생이 세운 공이 얼마나 위대했는지 확인했다”며, “우리나라 과학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후세에 알릴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지난 9월에 열린 망암 서거 400주기 학술발표회에서 박재광 박사는 21세기 동국여지승람에 [행주대첩, 3만 명과 싸워 이긴 2,300명]이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선조 26년(1593) 2월 12일, 권율은 단 2,300명의 병력으로 왜군 3만 명과 싸워 대승리를 거두었다. 이 행주대첩은 임진왜란 3대첩 중의 하나이면서 우리 민족의 전란사를 통틀어 가장 통쾌한 승리이다.
특히, 변이중이 제작하여 보내온 40량의 화차는 왜군 공격의 기선을 제압하는데 효과적이었다. 당시의 화차는 문종 때 개발한 화차를 개량한 것으로, '중신기전(中神機箭)' 100발을 사격할 수 있는 '신기전기화차(神機箭機火車)'와 서너 발의 탄환을 장전한 '승자총통(勝字銃筒)' 40정이 장착되어 있어 한꺼번에 수백 발의 탄환을 발사할 수도 있는 '총통기화차(銃筒機火車)' 였다.“고 주장했다. 행주대첩에서 변이중선생이 제작한 화차가 승리의 가장 요인이었음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또한, 박성래 한국외국어대학교 명예교수는 “조선의 인물이나 역사의 중심이 성리학자 또는 유학에 치우쳐 실학을 통해 백성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훌륭했던 인물들이 빛을 보지 못한 점이 없지 않다”며 “망암 변이중 선생이야말로 우리나라 과학사에 길이 빛날 위대한 업적을 쌓았다”고 말했다.
망암 변이중 선생은 1546년 장성군 장성읍 장안리에서 출생해 23세 때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 생원이 되었고, 28세에 문과에 급제했으며, 사헌부 감찰, 공조좌랑, 성균관 전적, 황해도 도사가 되었다.
1592년 10월 선조의 특명으로 전라도 소모사(召募使)가 되어 화차를 발명, 화차 300량과 총통 등을 제작하여 전라감사 권율의 요청을 받아 화차 40량을 주어 행주대첩을 이루게 하였다.
선생이 별세한 뒤 장성읍 장안리에 봉암서원을 세워 주향으로 모셨고, 행주대첩을 이끈 권율장군을 주향으로 모신 행주서원에 배향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