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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장성 삼계면 관수정(觀水亭):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1984.2.29.</p> <p>관수정(觀水亭)은 정면(正面) 3칸· 측면(側面) 1칸 규모로, 지붕은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며 우측 2칸은 마루를 깔고 좌측 1칸은 방(房)을 두었는데, 3면(面)을 들어 올릴 수 있는 열개문과 좌우 옆면은 낮은 평난간(平欄干)을 돌리고 뒷면은 벽(壁)으로 처리한 지지당 송흠(知止堂 宋欽, 1459~1547) 선생이 세운 정자(亭子)로 “물결을 보면 물의 근본을 알고, 맑은 물을 보고 나쁜 마음을 씻는다.” 라는 의미로 관수정(觀水亭)이라 했다.</p> <p>송흠 선생은 1459년에 장성군 삼계면 주산리 정각마을 태생으로, 1492년 과거(科擧)에 급제(及第)하여 중앙에서는 병조·이조 판서,</p> <p>의정부 좌참찬, 판중추부사 등의 벼슬을 하였고,</p> <p>지방에서는 전라도관찰사, 보성·옥천·여산 군수, 순천·담양·장흥 부사, 나주 목사, 전주 부윤, 한성부 좌윤 등을 두루 거쳤고 청렴결백한 목민관(牧民官)으로 청백리(淸白吏)에 녹선 되었으며, 삼마태수(三馬太守)라고도 불린다.</p> <p>송흠 선생은 51년간의 관직(官職)생활을 마치고 82세 되는 1540년에 고향으로 내려와 삼계면 천방길 용암천(龍巖川) 옆 에 관수정을 세웠다. 그 후 폐허(廢墟)로 있었는데 1786년에 선생의 후손인 송익좌(宋益佐)가 중수(重修), 1800년 중·후반에 두 번째로 중건(重建)했지만 한국전쟁(韓國戰爭) 시 소실(燒失)되었고 1955년에 다시 지어 지금에 이르렀다.</p> <p>정자에는 송흠 선생의 한시(漢詩), 관수정기(觀水亭記), 친필 취증건상인(醉贈健上人) 등 글과 김안국(金安國), 소세양(蘇世讓), 양팽손(梁彭孫), 송순(宋純), 임억령(林億齡), 김인후(金麟厚) 등 당대(當代) 명현(名賢) 23분의 시(詩)를 포함한 많은 현판(懸板)이 걸려있다.</p> <p>*관수정(觀水亭): 맑은 물을 보고 나쁜 마음을 씻는다는 뜻의 송흠 선생을 기리는 정자.</p> <p>장성 삼계면 관수정(觀水亭):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1984.2.29.</p> <p>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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