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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28 09:0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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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디터
임진왜란과 국보1호· 보물1호 서울(한양)의 4대문大門은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즉, 음양오행에 따라 동쪽에는 동대문(흥인지문興仁之門), 서쪽에는 서대문(돈의문敦義門) 남쪽에는 남대문(숭례문崇禮門), 북쪽에는 북대문(숙정문肅靖門)인 바 일제강점기에 당시 서울의 4대문 철거계획에 의거 서대문과 북대문이 헐어버렸지만 남대문과 동대문은 마치 프랑스의 개선문처럼 여겨 1934년 8월 조선총독부에서 ‘조선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보존령’ 발표 당시 보물 1호로 남대문, 2호로 동대문으로 지정한 사유인 즉 임진왜란 때 소서행장(고니시 유키나와) 군대가 제일 먼저 한양에 진입한 문이 ‘남대문’이며 ‘동대문’은 두 번째로 가등청정(가토오 기요마사)군대가 입성한 문임을 기념키 위한 것을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1955년 문교부 문화국이 ‘조선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보존령’을 근거로 국보 1호 남대문, 2호 동대문으로 재분류했다가 1962년 12월 문화재보호법 제정과 함께 국보, 보물, 사적, 명승, 천연기념물, 중요무형문화재, 중요민속자료 등 다양한 형대로 문화재를 지정할 때 국보 1호는 서울 남대문, 보물 1호는 서울 동대문으로 지정됐다가 1997년에 문화재 명칭을 바꿔 국보 1호는 서울 숭례문으로, 보물 1호는 서울 흥인지문으로 변경되어 오늘에 이르게 됐답니다. 아, 임진왜란! 선조 25년 임진년(1592년) 4월 13일 부산포를 침략한 왜군에게 불과 18일 만인 5월 2일에 한양을 점령당하고 궁궐을 뒤로한 채 흙먼지를 덮어쓰고 몽진蒙塵길에 올랐던 임금님! 바람 앞의 등불 같은 누란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400여 년 전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시공을 초월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만약 호남이 없다면 국가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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