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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DIV id=cContent style="MARGIN: 0px 0px 10px"> <DIV class=cContentBody id=contentDiv style="MARGIN: 0px"><LINK href="http://editor.daum.net/services/blog/5.4.44/css/contents4view.css" type=text/css charset=utf-8 rel=stylesheet> <STYLE type=text/css> <!-- div { color: #666664; } li { color: #666664; } a, a:link, a:hover, a:visited { color: #666664; } td { color: #666664; } .txc-search-border { border-color: #666664; } .me2day_daily_digest p, .me2day_daily_digest a, .me2day_daily_digest a:hover { font: 11px '돋움', dotum, sans-serif; } //--> </STYLE> <P> <TABLE cellPadding=3 width="100%"> <TBODY> <TR> <TD><FONT class=read_title><STRONG><SPAN style="FONT-SIZE: 14pt"> 임진왜란 420년 '장성남문창의'를 아시나요?</SPAN></STRONG></FONT></TD></TR> <TR> <TD align=right><FONT class=read_time> <P align=left><BR>올해가 임진년이니 1592년 임진년 4월에섬나라 왜적들의 침략으로<BR>태평성대를 구가하던 조선의 사직이 무너지고 수많은 무고한 백성이<BR>피를 토하며 죽어나간'임진왜란' 이 발발된 지 어언 420년!<BR><BR>장성문화원(원장 김영풍)이 주최하고 장성군(군수 김양수)이 후원하는<BR>임진왜란 420주년 기념강좌 <장성남문의병과 오산창의사>가<BR>7월18일(수)am10~12시에 장성문화예술회관에서 전 무등일보 편집국장을 역임한 <BR>이훈 선생의 강의가 있었기<BR><BR>그에 관련된<BR>'호남정신의 뿌리를 찾아서' (전남지방노동위원회 위원장 김세곤)를<BR>여기에 소개하며 '문무불여장성인'의긍지 속에<BR>삼가 우국충정에 빛나는 순국하신 임들의 명복을 기원하나이다.<BR></P> <DIV id=cContent style="MARGIN: 0px 0px 10px"> <DIV class=cContentBody id=contentDiv style="MARGIN: 0px"> <P> <TABLE height=600 cellPadding=5 width=450 align=left bgColor=#ffffff> <TBODY> <TR> <TD> <TABLE cellPadding=2 bgColor=#ececec> <TBODY> <TR> <TD align=middle><IMG hideFocus style="selector-dummy: true" height=600 src="http://www.honam.co.kr/upimages/gisaimg/201102/09352929.jpg" width=450 border=0></TD></TR> <TR> <TD>비각</TD></TR></TBODY></TABLE></TD></TR></TBODY></TABLE><FONT class=jul>호남만이 온전히 보존 군 보급 이어져<BR><BR>정예군 가려 뽑은 담용군 군세 더욱 강해<BR><BR>의병 참여 장성 넘어 전라도 전역 이뤄져<BR><BR>1월 하순에 서울시 용산구에 있는 전쟁기념관을 구경했다. <BR><BR>1층의 전쟁역사실의 ‘임진왜란에서의 의병활동’ 판에서 남문창의비 탁본을 보았다. 안내문에는 '임진왜란 때 호남 각 고을의 70여 의사들이 전남 장성현 남문에서 의병을 일으켜 물리친 공적을 기리기 위해 정조 23년에 호남 오산 남문창의비를 세웠다'고 적혀 있다. 오산(鰲山)은 장성의 옛 이름이다. 오(鰲)는 자라인데, 예전에도 황룡강변에는 자라가 많았나 보다. <BR><BR>다시 장성군 북이면 사거리에 있는 창의비각을 찾았다. 창의비문을 자세히 살펴본다. '호남 오산 남문창의비'는 1799년(정조23년)에 홍문관·예문관 대제학인 홍양호(1724~1802)가 비문을 지었고 1802년(순조 2년)에 세웠다. 홍양호는 '국조보감', '동문휘고(同文彙考)' 등을 편찬한 대학자이다. <BR><BR>'국역 남문 창의록·오산사지'에서 ‘호남 오산 남문 창의비명’ 번역문을 찾았다. 이 글의 대강을 읽어 보자.<BR><BR>내가 일찍이 호남에 왕명을 받들어 노령을 넘어 장성을 지나면서 남문에 올라가, 임진년 거의(擧義)의 사적을 가만히 상상해 보니 모든 의사가 피를 뿜고 주먹을 불끈 쥐며 머리를 북으로 돌려 난리에 달려가는 모양을 보는 듯 개연히 감개를 일으키고 능히 포상을 받지 못한 채 200년이 지나도록 묻혀 드러나지 않은 것을 한스럽게 여겨졌다…. 내가 받아 읽어 보매 옛적 1592년에 섬나라 오랑캐가 크게 쳐들어오고.<BR><BR>…흉한 칼끝이 곧장 서울로 향하니 조헌이 맨 먼저 일어나 고경명, 김천일과 더불어 의기를 들었으나 선후해서 패하니 삼남이 와해되었다.<BR><BR>이에 장성인 김경수가 금산의 패전 소식을 듣고 장성의 기효간, 윤진과 함께 군의 남문에서 창의하여 격문을 띄워 여러 의사를 모았다. 정운룡이 장성에서, 이응종이 영광에서, 김홍우는 고창, 이수일은 태인, 김언욱은 담양에서, 김경남·김부·홍원은 나주, 정절은 함평, 김억일·김해·김홍원은 부안에서, 기효증·박경은 광주, 서연은 흥덕, 윤황은 무안에서, 유희진은 정읍, 김성진은 무장에서 다투어 일어나 자제와 집안 머슴들과 마을 젊은이들을 데리고 오니 모인 자가 거의 2천명이었다.<BR><BR>드디어 단을 만들고 무리에 맹세할 때 김경수를 추대하여 맹주로 삼았다. 김제민을 의병장으로 삼으니 군대를 통솔하여 서쪽으로 향할 적에 체찰사 정철에게 건의문을 올리고 직산(稷山)에 이르러 적을 만나 수십 급을 베고 진위(振威)에서 정탐하는 왜병 13급을 베고 용인으로 진군하였다.<BR><BR>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평양을 수복하고 승승장구하여 벽제역에 이르러 왜장 소서행장에게 패하니 송응창이 화친을 주장하여 싸움을 금한다는 소식을 듣고 여러 의사들이 통곡하고 군대를 거두어 돌아와 여산을 지키며 남하하는 적을 막았다.<BR><BR>한편 기효증이 의곡 수 천석을 모아 바닷길로 의주 행재소로 보내니 왕이 가상히 여겨 말하기를 “엄동설한에 천리를 잘 왔으니 기이한 일이로다” 하였고, 이응종은 영광군수가 친상을 당하여 사직하였다는 말을 듣고 영광을 비울 수 없다하여 돌아가 군성을 지키니 무리들이 추대하여 장수로 삼았다. <TABLE height=338 cellPadding=5 width=450 align=right> <TBODY> <TR> <TD> <TABLE cellPadding=2 bgColor=#ececec> <TBODY> <TR> <TD><IMG hideFocus style="selector-dummy: true" src="http://www.honam.co.kr/upimages/files/201102/352929-0.jpg" border=0></TD></TR> <TR> <TD>탁본</TD></TR></TBODY></TABLE></TD></TR></TBODY></TABLE><BR><BR>1593년 5월에 명군이 다시 남하하니 여러 의병장이 격문을 내어 흩어진 병졸을 소집하고 이귀가 정예군을 가려 뽑아 그 이름을 담용군이라 하니 군세가 더욱 강했다. …전진하여 함양에 이르러 진주가 포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여러 의사들이 복수장 고종후를 따라 진주성에 들어가 김천일과 더불어 힘을 다해 싸우다가 전사했다.<BR><BR>1597년 8월에 남원의 급보를 듣고 여러 의병장이 장사 100여명을 뽑아 전주에 이르러 의병과 군량을 모집하고 전진하여 북상했다. 김홍우가 명나라 장수 해생을 따라 소사의 적을 대파하니 왜적들이 이웃 고을로 도망하자 추격하여 적 30여급을 베고 포로로 잡힌 우리나라 사람 17인을 구출하였다. 9월에 적을 파하고 돌아갔다. <BR><BR>아! 임진·정유의 난은 우리나라의 큰 액운이었다. 당시에 많은 군사를 이끌고 큰 진 을 지키는 자는 모두 쥐처럼 도망가 숨고 새처럼 흩어지지 않은 자가 없었다. 삼경 이 함락되고 임금이 의주로 옮겼으나 오직 호남만이 전 강토를 온전히 보존하여 비로소 명령이 통하고 군에 대한 보급이 끊이지 않았다.<BR><BR>…조헌·고경명 같은 분이 순절하여 충의는 해와 달을 꿰뚫고 명성과 위엄은 산악을 흔들었다. 장성 남문의 의거는 그에 버금간다. 다만 한스러운 것은 큰 적을 만나 큰 공을 세우지는 못했으나 그 뜻과 절개는 죽음과 삶으로 다름이 있겠는가. 그들이 평소에 간직한 바는 단지 한 때의 비분강개로 생을 버리는 일에 비할 바가 아닌 것이다. (후략) <BR><BR>이 비명을 읽어 보면 장성 남문 창의는 크게 두 가지 특징이 있다.<BR><BR>첫째는 의병의 참여가 장성 한 고을을 넘어 전라도 전역에 걸쳐 이루어진 점이다. 그 참여는 영광, 담양, 나주, 광주, 무안, 함평뿐만 아니라 고창, 태인, 부안, 흥덕, 정읍, 무장 등에 걸쳐 있다. 이들의 결속은 주로 혈연과 학연 그리고 지연으로 뭉쳐있다. 이항의 아들인 이수일이 태인에서 거의하고 이항의 문인인 김제민이 의병장으로 참여한 것이라든지, 김인후의 문인 김경수, 기효간, 윤진이 참여한 것이 그 증거이다. 더욱이나 남문 창의는 관군과 승려의 협조도 이루어졌다. <BR><BR>둘째는 의병활동이 3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점이다. 1592년 11월 1차 의병은 충청도 직산까지 진출하였으나 명나라 이여송이 1593년 1월 말 백제관 전투에서 패전한 이후 화친 정책을 펴자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돌아온다. 두 번째는 1593년 5월에 의병을 일으키었으나 6월 하순에 진주성싸움에서 모두 순절하고 만다. 순절한 이들은 바로 김경수의 두 아들 김극후와 김극순, 김인혼, 서홍도, 김언희였다. 세 번째는 1597년 정유재란 시 다시 의병에 나선 것이다. <BR><BR>한편, 장성 남문 창의는 호남 의병 모집 연구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창의 기간이 4개월에 걸친 점과 도체찰사 정철에게 10개조를 건의한 점이 그것이다. <BR><BR>장성 창의는 7월21일에 시작하고 11월24에 출병하여 4개월 이상 걸리었다. 임계영의 전라좌의병이 7월20일에, 최경회의 전라우의병이 7월26일에 거병한 것에 비하면 매우 오래 기간이다.<BR><BR>이렇게 창의 기간이 긴 이유는 의병과 의곡이 제대로 모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8월10일에 모인 의병이 174인, 의곡이 72섬인데, 8월24일에는 의병이 239명, 의곡이 190섬이었다. 실적이 저조하자 8월29일에 김경수는 여러 고을 책임자들에게 각자 고을에 돌아가서 의병과 의곡을 모집하자고 하였다. 11월24일 출병할 때에야 의병 1천651명, 의곡 496섬이 모였다. <BR><BR>왜 창의기간이 길었는지는 11월 18일 참모 서연이 작성하여 정철에게 올린 10개조의 건의문이 그 답을 준다.<BR><BR>당시에 전라도 사람들은 1, 2차 근왕병 모집과 거듭된 의병의 봉기로 매우 피로한 상태이었다. 강제징수와 노약자까지 동원되는 난맥상이 전개되었다. 호남이 국가의 보루라는 이름아래 과잉 동원을 하다 보니 도망자가 속출하였고 창고는 텅텅 비었다. <BR><BR>장성 창의 지도부는 이런 전라도 백성들의 애로를 깨달은 것 같다.<BR><BR>건의문에는 백성을 쉬게 하고 넉넉히 먹이는 것이 급선무라는 것과 인재를 얻어 백성들의 고통을 살펴야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음을 명백히 하고 있다. 구체적인 방안으로 (1)양민, 천민, 승려를 막론하고 왜적을 죽이거나 사로잡은 자는 관직을 주어 우대하고, (2)전사자의 유족에게는 부역, 공물 부과 등을 면제하여 충분히 보훈하며, (3)도망병은 잡아서 참수하고 처자까지 노비로 삼고, (4)각 관청에 보유하고 있는 불필요한 무기는 개조하여 전투 무기로 사용할 것 등이 포함되어 있다.<BR><BR>특기할 점은 영의정 류성룡도 (1)과 (2)의 건의문과 같은 정책을 널리 시행하여 국난을 극복하였고, 상당수 천민들이 벼슬을 얻은 점이다. <BR><BR>장성군 북이면에 있는 오산창의사를 간다. 사당을 들어가서 창의한 72분의 신위를 본다. 향로가 놓여 진 곳의 동쪽에는 김경수, 기효간, 윤진, 서연의 신위가 있고, 서쪽에는 이귀, 김제민, 김홍우, 박경의 신위가 있다. 무명전사의 신위도 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몇 번이나 의병을 일으킨 호남의 의인들. 이들이야 말로 진정 대의를 위하여 나선 의사이다. </FONT><BR></P></DIV></DIV><script type=text/javascript> var flashVersion = parent.swfobject.getFlashPlayerVersion(); if(typeof flashVersion != "undefined" && typeof flashVersion.major != "undefined" && flashVersion.major >= 10 && typeof ExifViewer != "undefined"){ var getTxImages = function () { var result, txImages, images, i, len, img; result = []; images = []; txImages = document.body.getElementsByTagName("img"); len = txImages.length; for (i = 0; i < len; i += 1) { img = txImages[i]; if (/tx-daum-image|txc-image/.test(img.className)) { images.push(img); } } return result; }; var txImages = getTxImages(); ExifViewer.load({ serviceName: "blog", images: txImages, showAllItem: false, imageViewer: { templateValue: { blogid: encodeURIComponent(BLOGID), articleurl: encodeURIComponent("http://blog.daum.net/segon53/15859915") }, photoList: { photoListProtocol: "blogphotolistselect", photoListDataFromUrl: "http://blog.daum.net/_blog/api/PhotoListSelectImageViewer.do?blogid={blogid}&articleurl={articleurl}&imageurl={imageurl}" }, groupList: { groupListProtocol: "blogcatelist", groupListDataFromUrl: "http://blog.daum.net/_blog/api/CategoryList.do?blogid={blogid}" }, data: { count: txImages.length, getViewingUrl: function (index) { return txImages[index].src; } } } }); } </script> <DIV style="CLEAR: both; PADDING-RIGHT: 0px; PADDING-LEFT: 0px; FONT-SIZE: 0px; PADDING-BOTTOM: 0px; MARGIN: 0px; LINE-HEIGHT: 0; PADDING-TOP: 0px"></DIV><script type=text/javascript> <!-- articleFileViewGeneration(); var myAgent = navigator.userAgent.toLowerCase(); if(myAgent.indexOf("msie 8")!=-1){ var webFontStyleEl = parent.document.getElementById("fontStyle"); if(webFontStyleEl) webFontStyleEl.styleSheet.cssText = webFontStyleEl.styleSheet.cssText; } //--></script> </FONT></TD></TR></TBODY></TABLE><BR></P></DIV></DIV></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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