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yle="MARGIN-TOP: 0px; MARGIN-BOTTOM: 0px"> face=궁서체 size=4>호박씨를 깐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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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ce=굴림 size=2>"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이 글을 올립니다."
어느 해 여름, 장마 빗속에 "면장님! 꼬숩고 맛있어,
잡사 봐!" 하시며
신문지에 둘둘 싼 깜 밥 선물(?)을 가지고 면장실을 찾았던 할머니가
그해 겨울,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
반 되쯤 되는 ‘깐 호박씨’를 보자기에 싸들고 면장실에 또 찾아와
"늙으면 잠이 안 와, 똥구멍으로 깐 게 아니고 일일이
하나씩 손톱으로 깐 거라
냄새도 안 나고 몸에 좋으니 잡사 봐!" 하셨다.
설 추석 명절 때도 부모님을 찾지 않는 세
아들이지만
그래도 효자라고 늘 자랑하던 할머니의 쌀독은
몇 해 전 영감님이 돌아가신 후에는 언제나 텅텅!
호적에 아들
삼 형제만 없어도 부양의무자가 없는
‘생활보호대상자’로 책정되면 먹고사는 것은 걱정 없으련만
먹 거리 챙겨드리는 동네 부녀회가 효녀
심청이라.
"가난해서 학교도 못 댕긴 자식들, 지들 살기도
얼마나 폭폭 하면 명절 때도 못 내려올 것이요
생각 허면 그
놈들이 짠 혀!"
부양의무자인 삼 형제를 부양무능력자로 인정하여
‘한시적 생활보호대상자’로 책정해 드리니 한시름 덜었다며
할머니는 보은의 호박씨를 까셨나 봅니다.
생활보호생계보조금 중 못 쓰고 아끼고 아낀 삼십만 원을
손자 대학등록금에
보태신 할머니는 이듬해 추석 다음 날
영감님 곁으로 영영 떠나셨는데 장례를 마치고 난 후
떠돌이 막노동으로 막장인생을 산다는
큰아들 내외분이
면장실로 찾아와 '어머님 유언'이라며 눈물 젖은 ‘깐 호박씨’
한 되를 놓고 총총히 떠났던 그분들, 혹시, 올
추석 성묘길에 만나면
'호박죽'이라도 한그릇 하면 좋으련만!
존경하고 사랑하는 소세사이 가족여러분!
만월滿月
달빛에 만당홍소滿堂哄笑
‘웃음소리’ 가득한 행복한 한가위 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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