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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 그 웬수 다 갚았수!
icon 소천재선
icon 2003-12-11 13:20:13  |  icon 조회: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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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 그 웬수 다 갚았수!


color=red>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는 갖가지 '게이트'... 온 나라가 진동한 '썩은 돈
냄새'...
다시 되돌아보고 싶지 않은 일이 너무 많았던 신사년 한 해가 저물어가는 세모에 그래도 가뭄 속 한줄기 싱그러운 단비처럼 많은
한국인들의 가슴에 위안으로 기억될 일이 있었다면 단연 가난한 한 할머니의 이야기가
아닐까.
- 2001년 12월 28일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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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전 세상을 뜬 남편 이두봉씨를(李斗奉)
대신해


산불 피해변상금
1.230.157원을 갚은 용간난(龍干蘭)할머니.


9월 18일 변상금을
완납한 용 할머니는 "지난 20년 동안 가슴 한구석이 늘 빚 때문에 답답했는데 변상금을 갚아 후련하다"며 "영감도 이제 저승에서 편히 쉴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size=3>79년 3월16일, 홍천읍 삼마치고개에서 일어난 산불,
한약재를 케러 갂다가 담뱃불 실화로 불을
낸이두봉씨는


5개월 징역에 변상금
123만157원!



공무원 초임이 10만원이 채
안되던 시절,


손바닥만한 땅에 손수 14평 짜리
집을 지어 6식구의 거쳐를 마련한 게 바로 1년 전.


할아버지는 석방된
뒤일용잡일을 하다가 이듬해 중풍으로 앓다가


84년에 63세의 나이로 '변상금
123만157원을 남겨둔채!' 한많은 이 세상을 떠나면서



"변상금을 내지 않으면 자식들이 대신
내야하니 당신이 꼭 갚아달라"는 유언을 남긴 채...


올망졸망한 4남매 학비에 생활비도
막막한데눈앞이 캄캄해진 용간남 할머니


낮에는 남의 농사일,
저녁에는홍천시장통 칼국수집 헛드레일 일당이라야 고작 7천원.


꼭두 새벽부터 밤
늧게까지
그토록 절박한 삶을 이어가면서도



할머니는 매년 한두차례씩
3만~10만원의 변상금을 꼬박꼬박 납부하면서


"그 양반 생전에 산불 낸
것 가지고 얼마나 가슴아파했는데... 내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유언대로 빚을 다 갚아 저승길을
홀가분하게 해줘야겠다는 생각뿐이었지요."


이내 눈시울이
젖어든할머니.



그렇게 어렵살이 키운 4남매는 올해
28세인 막내아들 빼고 모두 가정을 이뤄


손자손녀도 6명이나 봤다. "자식들이
모두 착해 속 한번 안 썩이고 커줬다"는 게


큰 자랑이었으며 아들 셋 중 둘이
대학을 나왔다는 게 더 큰 자랑임은 물론이고...


할머니 가슴속에만 묻힐뻔 했던 이토록
아름다운 사연이



어찌어찌하여 세상에 알려지자
여기저기서 뜨거운 반응이 이어져


산림청장님께서 직원들과
십시일반,변상금과 같은 액수인위로금 130만원을
전달하며


"생계유지조차 어려운 환경 속에서
할머니가 보여준 준법정신과 책임의식은


전 국민에게 큰 감동을 줄만큼
아름다운 일"(당시 申洵雨 산림청장) 이라 감동 또 감동!



"아름다운 얘기에 감동했으며 할머니를
본받아 정직하게 살아야겠다"는


격려편지와 size=3>작은 성금들이 모여들었고
이처럼 따뜻한 격려가 이어지자할머니는 평생 꿈이던
칼국수집을 차릴 용기를 내


칠순을 바라보도록 남의 집일만 하던
할머니가 처음 '내 가게'를 갖게 되는 것이다.



"김치도 맛있고 국수도
맛있고 인심도 맛있고 이제장사가 잘 될거요.


이제 홀가분해, 돈 벌어서 객지에서
직장다니는 우리 막내 장가도 보내야지."
할아버지는 악몽과 죄책감에 시달렸고 할머니는 신산(辛酸)의 삶을 대가로
지불했지만


'영감, 이제 편히 쉬슈. 그 웬수
다 갚았수!"



산소에 올린 소주 한 잔과


오징어가 한 마리가


징허게 맛이
있었다.



"여보! 할멈! size=3> 이승에서 짊어진 업(業)을


이제사훌훌
털고
올라가네!"


훠이~
훠이~



size=3>"이뭣고"










2003-12-11 13: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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