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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숙이면 부딪히는 법이 없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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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or=blue>벼슬에서 물러날 때까지 장장 18년간에 걸쳐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영의정에
재임,
세종(世宗)의 가장 신임 받는 재상으로써 인품이 원만하고 청렴한 챙백리의 표상이며
시문(詩文)에 능하고
음률(音律)에도 밝았다는 맹사성(1360~1438)의 일화 한 토막!
이름은 맹사성, 열 아홉 어린
나이에 장원급제하여 스무 살에 파주 원님이 되었으니
애기처럼 하늘을 날을 듯한 젊은 혈기와 객기, 그리고 자만심으로 가득 찬
맹사성이
선정을펼쳐보자하고 어느 날 무명 선사를 찾아가
"스님! 스님 생각으로는 이 고을을
다스리는 원님으로써
내가 최고로 삼아야 할 좌우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오?" 하고 묻자
무명 선사 대답하여
가로되!
"그거야 나쁜 일은 하지말고 착한
일을 많이 베푸시면 되겠지요."
"내가 세 살 먹은 애기요? 삼척 동자도 다 아는 그런 것을, 고작 그것뿐이오?"
기고만장한
맹사성이 썩 자리에서 일어나려 할 제
무명 선사께서 녹차나 한 잔 하자며
붙잡아
못이기는 척 슬그머니 자리에 앉았는데 선사께서 찻물이 철철 넘치도록
그의 찻잔에 자꾸만 차를 따르는 것이 아닌가!
"스님!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젖는데
그만 따르시지요?"
선사는 태연하게 넘치는 찻잔을 보면서도 계속 차를 따르면서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는 맹사성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가라사대!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적시는 것은
알고, 지식이 넘쳐 인품을 망치는 것은 어찌 모르십니까?"
선사의 이 한마디에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빨개진 맹사성이
황급히 일어나
방문을 '확'열고 나가다가 '꽝!'
"아이구 아파라!" 그만 방문에
머리를 세게 부딪혀 별이 번쩍!
그러자 스님이 빙그레 웃으며 하시는 말씀인즉
"고개를 조금만 숙이면 부딪히는 법이 없거늘!
허허허!~"
선비의 청빈이
미덕이었던조선왕조 오 백년!
태조에서 순조에 이르기까지 1년에 한 명 꼴도 안 되는 총 2백17명의 청백리는
예조에서
올린 후보자 중 의정부 대신들이 묘당(廟堂)의 엄격한 심사 후최종 선발.
대단한 희소가치, 하니 대대손손
가문의 영광일 수 밖에!
황희(黃喜·1363∼1452) 정승은 비가 새는 집에서 딸 일곱 명과 함께 살았는데
한 벌의 치마로
부인부터 막내딸에 이르기까지 공동으로 번갈아 입었다하며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1542∼1607)은 육척장신으로 키가 컸지만
삼간두옥(三間斗屋)에서 쭈그리고 살다가 생을 마감했는데, 염을 하는 방이 너무
작아
시신의 발목이 문밖으로 뻗게 되어 방에서 입관을 할 수 없어 문하생들이 대성통곡.
오늘 날, 공인으로써의 '공인의식'
보다는 '공짜의식'이 문제라 하나
깨끗한 정치, 돈 안 드는 정치, 희망의 정치를 위하여
제17대 총선 후보자들이 한결같이
'청렴'하고 '결백'하다하니 마음 든든 하외다.
참회하며 인연을 끊고 마음을
비우고
삼보일배(三步一拜)에 108拜에
절하는라고생들 하시고
환골탈태, 거듭
태어나려는정치인들의 참 몸부림이었으면 좋으련만...
성철(性徹) 스님은
‘하심(下心)’에 대해
“좋고 영광스러운 것은
항상 남에게 미루고 남부끄럽고 욕된 것은
남모르게 내가 뒤집어쓰는
것이 수도인의 행동”이라고 했고
“낮은 자리에 앉고 서며
끝에서 수행하여 남보다 앞서지 않으며
언제든지 고되고 천한 일은
스스로 한다”고도 했으니
땅바닥에 넙죽 엎드려 고개
숙이는 걸 보면 과연, 부딪힐일은 없겠구나!
어디 한 번 두고 보다가,
정말이면 큰 박수 한 번 더 쳐 드릴테니까
모두들 열심히
노력하여 꼭 성공하십시오!
size=3>그러나,'노력하면 꼭 성공한다'는 성공이론의 오류를 어찌
할꼬?
마라톤
월계관은단, 한 명뿐!
최후의 승자만이 웃는다!
어떻게? 으하하하! 으하하하하! 요렇게!
떨어져도 웃는 자는 미래가
있느니후일을 기약하며 '허허허' 웃을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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