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시감상(名詩感想) -
세월이 가면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내 서늘한 가슴에 있건만
1956년 이른 봄 어느 날 저녁. 유리창도 깨어진 초라한 술집
‘경상도집’에 모여 앉은 박인환, 이진섭, 송지영, 영화배우 나애심이 술을 마시며
술이 몇 차례 돌아가자 나애심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졸랐지만 그녀는 노!
그 때 갑자기 시인 박인환이 즉석 시를 썼고
그 시에 작곡가 이진섭도 즉석 작곡을 했고
가수 나애심은 흥얼흥얼 즉석 콧노래로 그 곡을 부르기 시작했다.
이렇게 즉흥적으로 탄생한 것이 그 유명한「세월이 가면」이란다.
이 시를 쓰기 전날 박인환은 그의 첫사랑의 애인이 묻혀 있는 망우리 묘지에 다녀왔단다.
‘지금은 이름은 잊었지만’ 그 애인의 눈동자와 입술이 나뭇잎에 덮여서 흙이 된
젊은 날의 추억에 젖어 무덤에 작별을 고한 일주일 후, 요절(夭折)하였으니 그의 나이 31세 아, 아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