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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선생의 애절양(哀絶陽)
icon 소천재선
icon 2009-07-17 16:38:13  |  icon 조회: 407
첨부파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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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절양(哀絶陽)



다산은 이 시를 쓰게 된 동기에 대하여 목민심서에서


이것은 1803년 가을 강진에 있으면서 지은 시이다.


노전이란 마을에 사는 한 백성이 아이를 낳은지 사흘만에 軍保에 등록되고 이정이 소를 빼앗아 가니


그 사람이 칼을 뽑아 자기의 생식기를 스스로 베면서 하는 말이 "내가 이것 때문에 곤액을 당한다고"
하였다
.



내가 이를 듣고 이 시를 지었다.


그야말로 다산은 이 시를 통해


당시 군정의 문란을 생생하고 집약적으로 표현하였다.

애절양(哀絶陽)


- 茶山 정약용 -



갈밭마을 젊은 아낙 울음도 서러워라
현문(縣門 - 현감이 근무하는 관아의 문) 앞 달려가 통곡하다 하늘보고 울부짖네.


전쟁나간 지아비 돌아오지 못한 일이야 그래도 있을 법한 일이로되
사내가 제 양물을 잘랐단 소리 예로부터 듣도 보도
못하였네.

시아버지 삼년상 벌써 지났고 갓난 아인 배냇물도 안 말랐는데
이 집 삼대의 이름이 모두 다 군적에 실렸구나.


관가에 가서 억울한 사정 호소하재도 범 같은 문지기 버티어 섰는데
이정(里正 - 지금의 이장 정도되는 직)은 으르렁대며
외양간의 소마저 끌어갔다오.

남편이 식칼 갈아 방안으로 들어가더니 선혈이 자리에 낭자하구나
스스로 부르짖길 "이 바로 자식
낳은 죄로다!"

잠실궁형이 또한 지나친 형벌이고
민땅의 어린애 거세하던 풍속 참으로 가엾은 일이었거든


자식낳고 사는 건 하늘이 내린 이치
하늘 땅 어울려서 아들되고 딸되는 것

말이나 돼지 거세함도 가엾다
이르는데
하물며 대를 잇는 사람에 있어서랴

부자집들 일년 내내 풍악 울리고 흥청망청
이네들은 한톨 쌀 한치 베 내다
바치는 일 없거니

다 같은 백성인데 이다지 불공평하니
객창에 우두커니 앉아 시구편을 거듭거듭 읊노라.


*시구편( 鳩篇):시경 조풍에 실린 작품.
군자가 백성을 대함이 공평하고 전일함을 시구새에 부쳐 나타낸 내용.

다산은 시경가의에서 "이 시 1편은 곧 성현의 극공과 제왕의 요도라"고
의미 부여를 한 바 있다.


源文



蘆田少婦哭聲長(노전소부곡성장)
哭向縣門號穹蒼(곡향현문호궁창)
夫征不復尙可有(부정불복상가유)
自古未聞男絶陽(자고미문남절양)
舅喪已縞兒未조(구상이호아미조)
三代名簽在軍保(삼대명첨재군보)
薄言往소虎守혼(박언왕소호수혼)
里正咆哮牛去조(이정포효우거조)
磨刀入房血滿席(마도입방혈만석)
自恨生兒遭窘厄(자한생아조군액)
蠶室淫刑豈有罪(잠실음형기유죄)
style="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閩囝去勢良亦慽(민건거세양역척)
生生之理天所予(생생지리천소여)

乾道成男坤道女(건도성남곤도여)
선馬분豕猶云悲(선마분시유운비)

況乃生民思繼序(황내생민사계서)
豪家終歲奏管弦(호가종세주관현)

粒米寸帛無所捐(입미촌백무소연)
均吾赤子何厚薄(균오적자하후박)

客窓重誦시鳩篇(객창중송시구편)



출처 : 다산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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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17 16:3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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