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야 면장(免牆)을 한다
전남 장성군 북하면장 공병주
소천(笑泉) 면장 선배님!
지난 84년 3월 10일, 장성군 남면사무소에서 제가 선배님을 처음 만났지요.
그 때 선배님은 쳐다봐도 잘 보이지 않을 만큼 높은 부면장이었고,
나는 담양군에서 갓 전입한 8급 면서기였으니 25년이란 세월이 구름에 달 가듯이 훌쩍 지나갔군요.
그동안 선배님을 지켜보면서, 항상 변함없이 소탈하고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마치 요즘 뜨고 있는 막걸리 같은 분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양주처럼 비싸지도 않고, 소주처럼 독하지도 않으면서 특별한 안주가 없어도
언제 어디서나 아무나 붙잡고 푸짐하게 먹을 수도 있고,
거기에다 한 사발 쭉 들이켜고 나면 얼큰하게 취해오면서 배까지 든든할 뿐만 아니라
힘든 일도 고된 줄 모르고 잘 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석오조가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면장을 한번 하고 나면 ‘할아버지가 면장이요, 아버지가 면장이요, 손자가 면장’이라고
삼대에 걸쳐서 우려먹을 수도 있고, 당장 가문으로만 따져도 과장집안보다는
면장집안이 훨씬 더 좋게 보여 시집, 장가 빨리 안가는 자식새끼들을 위해서도
면장집안이라는 더 좋은 조건에서 잘난 사위, 예쁜 며느리까지 얻을 수 있으니 이 아니 행복입니까?
하여튼 별로 높은 벼슬은 아니지만 시골면장이 최고라니까요.
물론 면서기에서 면장까지의 길이 그리 순탄한 길만은 아니지만요.
소천 면장 선배님! 참 좋으시겠습니다. 그리고 축하드립니다.
시골면장도 해보고, 금상첨화로 40년 공직생활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시골면장의 웃음소리’라는 책까지 출간하셨으니 이제 여한이 없으시겠습니다.
소천(笑泉)이라는 선배님의 호(號)처럼
해맑은 웃음이 샘처럼 솟아나는 즐거운 인생을 즐기시기 바라며
저도 바둑처럼 한 수 놓아 드릴께요.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말 중에는 그 본래의 의미와 다르게 사용하는 경우가 있지요.
그 중의 하나가 ‘알아야 면장을 한다.’라는 말입니다.
보통 이 때의 면장을 말단 행정구역의 수장인 面長으로 잘못알고
‘행세께나 하는 높은 자리에 서려면 공부를 하라’는 뜻인 줄로 아는데
실은 지금까지 세 번째 면장을 하고 있는
나도 최근에서야 안 사실이니
내가 생각해도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진짜 면장의 뜻은
‘담장(牆)에서 얼굴(面)을 면(免)한다’는 면면장(免面牆),
곧 면장(免牆)에서 나왔으며,
이는 논어(論語) 양화(陽貨)편에 그 유래를 두고 있다고 합니다.
공자가 아들 리(鯉)에게 말하길
‘사람이 공부를 하지 않으면 마치 담장을 마주 대하고 서 있는 것과 같다’라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면장(面牆)이란 ‘무식하여 담벼락을 마주하듯 답답함이요’,
면장(免牆)하면 ‘아는 것이 많아 담장을 벗어나는 것’이니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말은 담장에서 벗어나는 면장((免牆)이 옳다고 보아야 할 것이고,
그 진짜 뜻은 부지런히 공부해서 지혜를 키우고 사람다운 행동을 하라‘는 의미로
새겨들어야 할 것입니다.
나는 아직 정년퇴임이 한 6년이나 남았으니 앞으로도 면장을
두세 번 정도 더 해 먹고 선배님처럼 “하하하! 호호호! 하하하!” 웃으면서
나도 선배님 뒤를 따르렵니다. 그때쯤 소천선배님은 ‘인생칠십고래희?’
소천 면장 선배님! 파이팅!
2010년 3월 10일
경인년庚寅年을 맞이하며
전남 장성군 북하면장 공병주 小筆拜 (hp 010-3133-71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