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 세상사는 이야기_이전
노름꾼
icon 소천재선
icon 2010-08-21 10:05:06  |  icon 조회: 1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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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름꾼

한겨울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었다. 깊은 밤 모두가 잠이 들고 산숲에서 들려 오는 승냥이의 배고픈 소리가 간간이 울려오고 있었다.
얼마 있으면 첫닭이울 시간인데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마을 입구를 들어서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머리가 헝클어지고 구겨진 바지가랑이에 술이 튀어 낭자한 모습이 무슨 허망한 일을 치르고 난 사람의 몰골이었다.
간간히 신음 비슷한 한숨을 내쉬는 것으로 보아 마음에 심한 충격을 받은 것이 분명했다.
마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노름꾼 방씨였다.
방씨가 마을에 이사해온 시기는 분명하지 않지만 선친께서 마을에 터를 잡은 시기와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누가 먼저랄 것은 없었다.
방씨의 부친이 장판없는 방에서 돌아가신것과 상여와 상여꽃을 보면서 사람이 죽으면 저렇게 되는 것이구나하고 새로운
세상을 접하는 경이로움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방씨는 그의 부친 생존시에는정말 부지런한 농부였다.

닭이 울기전에 일어나 소를 위해 소죽을 끓이고 동네 샘터에서 물을 길러 부엌 커다란 항아리에 채워
아침 밥을 짓고 허드레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해가 뜨면 싸리비로 마당을 쓸고 동네 고샅까지 말끔하게 청소 했다. 이러는 방씨를 보고 동네 사람들은 입을 모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의 처 호동댁은 이런 남자에게 시집온 것에 대해 늘 감사하고 있었다.
그런데, 방씨는 돌아가신 부친의 묘에 풀이 자라기도 전에 마을 노름방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방씨가 노름에 관심을 가진것은 아니었다.

돌아가신 자신의 부친에 대한 죄송스러움과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서 막걸리 잔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노름패들과 어울리게 되었던 것이다.
노름꾼들은 초보자를 끌어들일 때 쓰는 법을 방씨에게도 그대로 활용했다. 점 1원부터 시작했다.
꾼들은 매일 조금씩 조금씩 돈을 잃어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는 점당 10원으로 올렸다. 이때도 계속해서 돈을 잃어주었다
매일 돈을 따는 바람에 액수가 상당해졌다.
논마지기를 짓기 위해서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해가 서산으로 넘어갈 때까지 뼛골이 빠지도록 일을 해도

손안에 지전 1원짜리 한 장 들어오지 않았는데 술마셔가며 화투짝을 쥐고 있으면 쏠쏠한 재미를 볼 수 있으니
구태여 힘들게 일할 필요없이 노름을 하는게 좋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노름꾼들은 방씨가 노름에 재미를 붙여갈 무렵 그러니까 가을걷이가 끝나갈 때였다.
방씨는 늘 하던대로 저녁밥상을 받자 부리나케 밥 한그릇을 비웠다.
숭늉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기 전에 벌써 구두를 찾아 신고 있었다.

아랫마을 노씨 집에서 노름을 하기로 연통을 받아 놓았기 때문이었다.
방씨는 주머니에 항상 두툼한 지폐를 넣고 다녔다. 그 동안 힘 안들이고 올린 수입이었다. 노씨 노름방에 모인 사람은 모두 5명이었다.
노씨가 닭한마리 잡고 막걸리를 술동이가 넘치도록 받아다 놓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첫판은 예전대로 방씨가 마수걸이를 했다.
방씨는 이러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안주머니에 지폐뭉치를 쑤셔 넣었다.
이때 꾼들의 눈빛이 빛나며 재빠르게 눈으로 암호를 주고 받았다.
이를 알리없는 방씨 화투짝을 솜씨있게 쳐대며 패를 돌렸다. 화투짝 스치는 소리만이 방안의 고요를 가를 뿐
모두들 숨죽이며 화투 패를 주워 들었다. 두장보기 갑오잡기 였다. 판돈이 순식간에 지폐로 수북히 쌓였다.
방씨는 거침없이 돈을 찔러댔다. 패를 까보는 순간 방씨는 눈앞이 노래졌다.
화투를 잡은 지 6개월 처음으로 패배를 한 것이다. 지금까지 딴 돈의 절반이 날아갔다. 그러나 방씨는 자세를 바로잡고 다음 판을 노렸다.
그런데 무슨 조화란 말인가!
번번히 한 끝 차이로 무릎을 꿇고 말았다. 주머니에 두툼한 지폐가 이미 바닥이 나버렸다.
방씨는 옆에 놓인 막걸리 잔을 들어 단순에 술을 마셨다.
속이 알싸 해지면서 정신이 번쩍들었다. 화투 패를 놀리는 꾼들의 동작이 너무 느리다고 느껴질 정도로 방씨는 이성을 잃어가고 있었다.
자정이 넘어갈 무렵 방씨는 그동안 딴 돈을 몽땅 잃어버리고 말았다. 거기다 엊그제 벼를 수매한 돈 일부까지 날리게 되었다.
꾼 중에 한명이 방씨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눈으로 상대편에 앉은 꾼에게 신호를 보냈다. 오늘은 그만 하자는 것이었다.
" 어, 오늘은 방씨가 너무 잃었으니 그만합시다."
" 그려, 그려"
" 오늘만 날인가 낼도 있응께"
꾼들은 이구동성으로 맞장구를 쳤다. 그러나 방씨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 아니, 이사람들아 아직 초저녁인데 뭘"
방씨는 물러설 기세가 아니었다. 그러면서 화투짝을 돌렸다. 꾼들은 못이긴척 하며 화투짝을 집어 들었다. 방씨는 또 적잖은 돈을 날렸다.
이제 몸에 돈이 한 푼 없었다.
" 어! 방씨 돈 떨어진 모양이시"
" 그러니 낼 하자니까"
" 맞네 방씨, 낼 돈가지고 와서 해야지"
꾼들은 막걸리를 한사발씩 들이키며 정색을 하며 방씨를 바라보았다.
"이 사람들이 무슨 소리야 더 하자구"
방씨는 못이긴척 다시 화투짝을 잡는 사람들에게 눈을 치켜떴다. 이런 호재를 꾼들이 놓칠리 없었다.
조금 풀어주고 왕창왕창 끌어 당겼다.
화투는 새벽 닭이 홰를 칠 무렵 끝이났다. 술에 취하고 돈을 잃어 기운이 떨어진 방씨가 쓰러졌기 때문이었다.

이날 저녁 방씨는 돈 서마지기와 밭 서마지기를 날려 버렸다. 방씨의 가족들에게 생명같은 논밭이었다.
방씨는 노름에 눈이 뒤집혀 가족들 생각도 잊은채 무모한 행동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늦가을 가을 바람이 후려치는 다리를 끌다시피 집에 돌아와서 방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퍼져 버렸다.
그의 처 호동댁은 남편이 술먹고 놀다가 늦었거니 생각하며 요새 남편이 부쩍 외출이 잦은 것에만 짜증이 날 뿐
더이상의 나쁜 기분은 아니어서 실눈을 뜨고 한 번 노려보고
아직 첫닭이 울때까지는 잠을 더 잘 요량으로 눈을 감았다.

출처 : 문학사랑 (채규수 지음
)
2010-08-21 10: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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