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치민의 집
그토록 갈망했던 베트남 독립과 통일을 성취한 1975년 4월30일!
30년에 걸친 치열한 전쟁의 종지부를 찌고 남부 베트남이 해방된 날이며,
분단됐던 조국이 마침내 하나로 통일된 역사적인 날!
1890년 5월 19일에 태어나 1969년 9월 3일까지
오직 ‘그 날을 위하여’ 파란만장한 79년의 전 생애를 격정적으로 살다 간
베트남 민중의 영웅 호치민!
왜소한 체구의 남루한 초상과 누추한 그의 집 앞에서
과연 무엇이 한없는 존경심으로 숙연한 마음으로
발걸음을 멈추게 할까?
죽을 때 유품이라고는 지팡이 하나와 옷 두벌,
그리고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비롯한 몇 권의 책이 전부였는데
특히, 베트남 공무원들의 지침서로 채택된 ‘목민심서’는
프랑스와 세계 최강국인 미국을 격퇴시킨 혁명가이자
최고 통치자인 그가 평생 스스로 청렴 검소한 민중의 삶을 살며
공무원의 청렴한 공직윤리와 국민에 대한 의무를 깨우치는 잠언箴言이었을 터.
따라서 그 어떤 ‘권력의 부패’'에서도 자유로웠기에
그토록 강인한 지도자임에도 언제나 따뜻하고 인자했고,
모습이 매우 감동적이었기 그를 ‘인민의 벗, 호 아저씨’라고 부른다지만
‘용맹한 따이한 부대’가 철천지원수로 싸웠던 호치민 부대의 괴수가 아닌가.
월남패망 당시, 우리 주윌 한국 군인과
한국기업인들이 현지 결혼한 베트남 여성들과
태어난 2세인 자식들을 그대로 버리고 도망치듯 황급히 빠져 나왔으니
경멸의 의미인〈혼혈잡종〉이란 “라이(Lai)”와
대한大韓의 베트남 말인 “따이한(Đại Hàn)”이 합쳐진 ‘라이따이한(베트남어: Lai Đại Hàn)’
이 무려 3만을 넘는다니 그동안 ‘침략군 따이한의 자식’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아 가며
어렵게 살아왔을 그들을 생각하니 이국의 하늘아래 나그네의 목이 메고
파월장병 출신인 내 친구 박창균이가 농담처럼 했던 말이 귓전을 맴돈다.
“야, 베트남 가면 나를 꼭 닮은 사람을 보면 꼭 사진 찍어오라!
혹시 그 놈이 내 아들일지도 모르니까.”
불법 탈법 위법 편법 등 온갖 권력형 부정부패비리에서 자유로운 지도자.
오직 국민의 편에서 초당적으로 공정한 사회에 올-인 하는 지도자.
민족의 자부심과 긍지를 고취하고 부강한 나라를 위하여 고민하는 지도자.
통일조국을 실현에 온 몸을 던져 헌신하는 하는 지도자가 그리워진다.
호치민 집 호수 산책로를 따라 걷는데
주월미군사령부에서 장군으로 근무했다는 준장 계급장에 빛나는
군모를 쓴 두 명의 미국인 할아버지와 함께 기념사진 찰~칵!
-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