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할머니가 파출소에 찾아와 성추행을 당했다며
자초지종을 길게 설명했습니다.
딱히 고발이랄 수도, 하소연이랄 수도, 무용담이랄 수도 없는
길고 적나라한 설명을 끝낸 할머니는 아무런 조치도 요구하지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섰고 궁금한 경찰관이 조심스레
할머니에게 물었답니다.
“할머니 그럼 왜 오셔서 진술하신 거예요?”
할머니가 빙긋 웃으며 모두가 들으라는 듯 대답했다지요.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걸) 알고는 있으라구..”
일부 오해의 소지가 있는 실화 같은 농담이지만,
그와는 별개로 ‘알고는 있으라구’ 라는 말, 가슴에 꽂힙니다.
마음의 영역에서는 차 떼고 포 떼면 그 말 하나 남지 싶어서요.
내 마음의 상태를 누군가에게 알리기 위해
어깃장을 놓거나 침묵하거나 분노하거나 눈물 흘린 적
한 번쯤은 있지 않나요.
알아만 주면, 알아준다는 생각만 들면,
아무런 조치 없어도 나쁜 감정들은 봄눈 녹듯 사라집니다.
일종의 심리적 매직입니다.
우리의 속마음에는,
누군가를 향해 내 마음이 이렇다는 걸
‘알고는 있으라구’ 말하고 싶은 욕망이 늘 활화산처럼 들끓고
있다고 저는 느낍니다.
여기서 '저는' 정혜신 심리학박사 입니다. 그이의 <그림에세이>에서 옮겨왔습니다.
어제는 소천 선생께서 아카데미에 들르셨더군요.2개월여 만에 공사다망한 강태공의 얼굴이었지요^^
영화<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 여주인공 '프란 체스카'(메릴 스티립 扮)의 잔망스런 방뎅이를 느린 째즈음악처럼 그러안던 자칭'마지막 카우보이' 크린트 이스트우드가 스크린에서 지금 막 걸어나왔지요. 청바지를 입었더라면...ㅋ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