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장한 사람들은 들로 산으로 수렵채취를 떠났을 것이다.
때로는 멀리 산을 넘고 강을 건넜을 것이고 때로는 띠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기도 했을 것이다. 짧게는 몇 시간이나하루도 걸렸을 것이고 ,길게는 몇 달 혹은 몇 년이 걸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신체가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은 동굴 속에서 혹은 움막에서 수렵채취를 떠난 가족들이 돌아오기를 학수고대하며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호랑이 같은 뭇 짐승들의 울음소리와 위협에, 홀로 있음으로 오는 무서움 증에 덜덜 떨었어야 했을 것이다.
낮에는 태양과 구름과 바람의 친구가 되었을 것이고 밤에는 반가운 달림과 데이트를 하고 무수한 별들과 귀엣말로 속삭였을 것이다. 그러다가 태극도설을 그려냈을 것이고 음양과 오행을 터득했을 것이다.
이제, 사냥에 끼이지 못하고 밥값을 못해 눈총을 맞아야 했던 천덕꾸러기들이 천문을 읽어 수렵채취에 필요한 길흉을 예측하고 개인들의 운명을 점지할 능력을 갖춘 지식인으로 등장한다. 이 지식인들이 점점 중요한 인물로 부상한다. 이들은 대자연의 공포로부터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예측 가능한 미래에 대한 행불을 애기해 주었을 것이다.
이들은 성치않은 장애아로 태어났지만 꽤 많은 인물로 거듭나 군장국가의 제사장이나 고대국가의 책사로 이름을 얻는다.
하지만, 오늘날의 장애우들은 복지예산을 축내고 걸리적 거리는 차별의 대상일 뿐이다.약육강식의 정글의법칙이 아니라 서로 돕는 공존의 법칙이 필요한 사회다.
다윈도 “경쟁과 약육강식”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직접 언급하지 않았고
다만, 후세사람들의 편협한 논리 일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