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만필笑泉漫筆]
표 헤는 밤
소천笑泉 김재선
시인, 장성군 행정 동우회장
선거가 치러지는 곳곳마다
열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찍고 싶은 사람도 없이
벽보속의 면면을 다 알 듯합니다.
공약 속에 헛공약 거짓부렁 말을
이루 다 못 밝힌 것은
너무 달콤한 꾐에 빠짐이요,
한낱 정에 끌린 때문이요,
차마 얽힌 인연을 다 끊지 못한 까닭입니다.
표 하나에 눈물과
표 하나에 웃음과
표 하나에 간절함과
표 하나에 운명과
표 하나에 삶과
표 하나에 여러분, 여러분
여러분, 나는 표 하나에 웃고 울며 말 한 마디씩 불러 봅니다.
운동할 때 표밭을 함께 갈던 참모들의 이름과, 일가친척 사둔 네 팔촌까지
이런 혈연血緣들의 이름과, 벌써 옛날이 된 학교 학연學緣들의 이름과
후원금을 보내준 지연地緣들의 이름과, 너구리, 원숭이, 괭이, 박쥐, 철새,
‘모바일 보트’, ‘리서치 코리아나 갤럽’ 이런 익숙한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언제나 함께 있습니다.
꿩이 콩밭에만 맘 있듯,
당선자,
그리고 낙선자 우린 오월동주吳越同舟입니다.
나는 꿈속에서 꿈꾸며
그 숱한 사람이 찍은 투표지에
눈 부릅뜨고 내 이름
찾다가 차마 눈을 감아버렸습니다.
실은, 내게 찍은 표가 적어서
부끄럽고 창피해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먼 훗날 ‘헛되고 헛되어 모두 헛되다’ 철이 들면
두 번 다시 선거 출마할 생각을 접고
나 죽어서 눈에 흙이 덮일 때
구름처럼 둥둥 떠날 거외다.
주) : 2012년 4.11 총선을 바라보며
윤동주(尹東柱 1917∼1945) 시 ‘별 헤는 밤’ 패러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