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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대 황실보이차 국내 첫 개봉 품다회
icon 민종기 전남도의회 의정지원관
icon 2013-11-30 15:05:28  |  icon 조회: 17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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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대 황실보이차 국내 첫 개봉 품다회
월간 <茶의 세계> 주관, 화순 만연산 선정암에서

이학수기자
















▲ 처음 개봉한 황실보이차와 차를 살피는 참가자들 © 월간 <차의 세계> 제공

(화순=브레이크뉴스) 이학수 기자 = 9월 첫날 빙허각 이 씨가 능주 작설차의 우수성을 찬미했던 옛 능주 땅 화순 만연산 선정암에서 전남 한․중고문화연구회의 자문을 받는 가운데 월간 <차의 세계>가 주관, 중국 황실차 품다회가 개최돼 비상한 관심이 모아졌다.

차계 전문가, 스님, 차 애호가, 지역 기관장 등 17명이 참가한 품다회는 밀봉된 황실차 개봉에서부터 품다에 이르기까지 4시간 동안 무아지경에 빠져들어 가는 시간이었다.

얼마 전 광저우 차 박람회에서 청나라 광서(光緖) 23년(1897) 110년 된 푸얼차가 세상에 공개되어 이목이 집중되었으나 두 왕조(명나라, 청나라) 시대의 황실에 소장된 차가 한꺼번에 공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광주에서 거주하는 M모 국장이 황실 진년노차 푸얼차를 갖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그러나 그 실체를 알고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러다가 M국장이 지난 8월 월간지 ‘차의 세계 ’대표에게 연락을 함으로서 품다회가 이루어졌다. 장소는 함안 무기연당과 순천, 구례 등 여러 곳을 물색하던 중 고즈넉하게 품다하기 적합하다고 하여 화순 선정암이 선정됐다,

M국장이 화순 선정암을 선택하게 된 배경은 최근까지 공직생활을 하였던 고향인 화순군 관내에서 품다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 황실보이차 3가지를 놓고 품다하는 모습 © 월간 <차의 세계> 제공

■중국 황실 진년노차가 개봉되던 날

9월 1일 11시를 임박해서 선정암 앞에 이르렀을 때 선정암 학담선원 앞에 '중국 황실차 품다회'라는 플랜카드가 커다랗게 걸려 있었다.

그 옆에는 최수일 미래산업기술 연구원장과 박성열 세움연구소장이 밀봉된 차 개봉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한 시간째 계속하고 있었다. 그만큼 엄격하게 봉인된 것을 보고 황실도자기의 진면목을 살필 수 있었다.

선방 안에는 M국장이 소장하고 있는 중국황실도자기들이 이번 행사를 위해 특별 전시되었다. 건륭황제 때 제작된 법랑채 다구세트 도자기와 백옥다구세트가 휘황찬란한 빛을 냈고 갖가지 황실궁정푸얼차가 진열됐다.

그중 차 항아리 앞면 뚜껑에 육우의 ‘다경’이 쓰인 것이 있었다. 그 항아리는 중국과학감실안의 대가인 주진라오스(朱震) 선생의 감정서가 있었다.

행사가 시작되기 전 M국장은 중국 황실 도자기의 입수 경위를 설명했다. 한국인으로서 중국대륙의 지하를 17년간 뒤진 끝에 흑피옥조각상의 매장지를 최초로 발견한 중국유물의 대가인 김희용 씨가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울 시절에 적극 후원했다.

그 답례로 수준 높은 중국황실의 고대 차와 술이 그대로 담긴 도자기를 입수하게 되었는데 중국최고의 감정전문가인 주진라오스 선생을 통해 하나하나 검증절차를 거쳤다고 한다.

M국장은 “중국의 황실 차 도자기를 세상에 선보이는 것은 차의 세계 그리고 유물의 세계에 신선한 즐거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개봉에서 품다 까지 숨 막히는 순간들

점심 공양이 끝나 갈 무렵 학담선원 안에는 중국 강희황제 때 소삼채 사방관 도자기의 뚜껑을 열기 위해 곡물을 짓이겨 완벽하게 밀봉되어 있는 뚜껑에 물을 붓고 쇠꼬챙이를 이용하여 뚜껑을 여는 순간 300년간 잠자고 있던 푸얼차가 드러나면서 깊고 그윽한 차향이 퍼졌다.

참가 대중 몇 명이 사방관 도자기를 잡고 안에 담긴 푸얼차를 하얀 한지 위에 부었다. 찻잎을 살피니 타차류가 아닌 7자병차 형태로 만든 것을 쪼개어 넣은 것으로 밝혀졌다.

두 번째는 명나라 가정황제 때 제작된 오채항아리에 든 푸얼차였다. 이 차는 450년 전 가정황제를 위하여 법제된 푸얼차로 알려졌다.

똑같은 방법으로 항아리를 열고 차를 한지 위로 부었다. 그 또한 7자병차였다. 연대를 추정하기는 어렵지만 450년 전 만들어진 항아리 안에 푸얼차가 담겨 있는 것 자체가 희귀했다.

처음에는 소타차인 줄 알았는데 병차인 것으로 보아 차가 항아리에 들어가지 않자 차를 잘라 넣었던 것 같았다. 그러나 곰곰이 살펴보니 차의 연대는 도자기 제작연대와 같을 수 없음을 알게 됐다.

항아리에 담긴 차는 과학적으로 검증해야 할 일이지만 한국 땅에서 처음으로 명나라 가정황제, 청나라 강희황제 시대의 황실궁정차를 개봉한 것 자체가 사건이었다.













▲ 처음 품다하는 모습 © 월간 <차의 세계> 제공

450년 전 법제한 청나라 강희 황제 때 궁정차를 지켜보면서 가야사 터에서 나온 700년 된 용단승설차가 기억났다.

이상적의 <기용단승설>에서 근대 석파 이공(李公: 흥선대원군 이하응)께서 효서의 덕산현에 묏자리를 살피다가 고려 시대 옛 탑에서 용단승설 4덩어리를 얻었다.

한 덩어리는 내가 간단하고 또 한 덩어리는 추사에게 건네졌는데 추사가 초의에게 보낸 편지 중에 용단승설의 내력을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송나라 때 만든 용단승설 한 덩이를 얻었다오. 보물 중의 보물인데 이처럼 볼만한 것이 한둘이 아닌데 와서 보고 싶지 않습니까.󰡓󰡑라고 1851년 8월 13일 초의에게 보낸 편지에서 생생히 기록하고 있다.

가야사 터에서 나온 용단승설 이후 160여 년 만에 처음으로 갖는 황실품다는 차계의 사건이 아닐 수가 없다.

추사 김정희가 용단승설차를 논했다면 이날 품다 는 중국 강희황제 시대 만들어진 소담채 사방관 도자기에 만든 푸얼차와 무려 450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이 흐른 명나라 가정황제 때 제작되어진 오채항아리에서 꺼낸 푸얼차를 앞에 놓고 품다회가 이루어졌다.

원래 소수의 사람들로 극비리 품다를 진행하려고 했는데 품다 소식이 퍼지면서 M국장의 지인들이 몰려오는 바람에 17명이 한꺼번에 앉아 품다를 진행했다.

팽주는 푸젠 성 푸젠농림대의 차학박사인 중국다예연구중심의 김영숙 원장이 맡았다. 팽주 왼쪽에는 차의 세계 발행인이, 오른쪽에는 이 절의 주지인 보림 스님과 M국장 그 밖에 차 애호가들이 빙 둘러 앉아 품다가 진행됐다.

김 원장은 한꺼번에 많은 대중이 몰려오는 바람에 난처해했다. 그러나 능숙한 솜씨로 차를 우려내기 시작했다.

맨 처음 개봉한 중국 강희황제 때 소삼채 사방관 푸얼차로 시작했다. 찻잔은 청나라 때 청화백자로 했고 차호는 문양이 새겨진 법랑채 도자기를 사용했다. 차호에 갓 개봉한 찻잎을 듬뿍 넣고 차를 우려냈다. 첫 잔은 진하게 나왔다.

두 번째 잔도 마찬가지였다. 다섯 번을 반복해서 차를 우려냈지만 여전히 진한 탕색이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밀봉된 찻잎을 바로 우려내기 때문에 향이 진함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았다.

차호를 바꾸어 두 번째 개봉한 명나라 가정황제 때 제작한 오채항아리에 든 푸얼차로 품다를 시작했다. 두 번째 잔은 첫 번째 소삼채 사방관 도자기에 든 푸얼차와 비슷하게 느껴졌다.

450여 년간 잠자고 있던 차가 세상의 빛을 보면서 차가 막 잠에서 깨어났기에 진한 기운을 피할 수 없음을 감지했다.

그래서 한 달 전 기억을 떠올려 M국장에게 내게 시음용으로 준 차로 품평하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해서 450년 전 가정황제 때 법제한 푸얼차를 마시게 되었다. 이번에는 청나라 때 만든 개완용 차호로 바꾸었다.


김 원장은 찻잎 적당량을 넣고 다시 차를 우려냈다. 첫 잔을 잡고 오감으로 차맛을 감별했다. '아!' 하고 소리쳤다. 바로 '이 차가 아닌가' 했다.M국장은 옅은 미소로 답했다.

찻물은 유달리 맑았고 선명하며 붉고 빛이 났다. 두 번째 잔은 진 붉은 색으로 맑고 투명했다. 찻잔의 뚜껑에서 느끼는 향목의 우아함이 났다. 어떻게 이 오랜 세월을 버텨 왔는지 궁금했다.

여기저기서 차맛에 빠져들 즘 팽주는 능숙한 솜씨로 네 번째 잔을 우려냈다. 네 번째 잔을 높이 들자 붉고도 빛이 났다. 그 순간 개완잔을 열고 차의 표면에서 김이 무럭무럭 올라왔다. 그 순간을 놓칠 수 없어 사진을 찍었다. 우리의 표정을 살피던 보림 스님이 천량차를 꺼내 사람들의 마음을 돌렸다.

"천량차를 맛보실 분은 저를 따라 오세요."

다우들 일부가 스님을 따라 나서자 찻자리는 8석으로 간소화되었다. 너무 많은 인원으로 품다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보림 스님이 지혜를 내 일부 다우들을 분산시킨 것이다. 다섯 번째 잔이 나왔다. 입안에 들어가자 단맛이 났다.

여섯 번째 잔도 여전히 차맛이 강력했다. 열 번째를 우려내는 동안 여전히 짙은 붉은 색을 띠었다. 스무 번을 우려내는데도 차맛은 변함없었다. 8명이 둘러 앉아 차맛을 음미하는 동안 진공묘유에 이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차회가 4시간 동안 계속되었음에도 다우들은 차맛에 빠져 자리를 뜰 생각을 하지 않았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잔은 중후하면서 흙내가 났다.

이는 오랜 시간 동안 진공 상태에서 보존되었기 때문인 듯했다. 스무 잔을 우려내도 변함없는 향을 지닐 수 있었던 것은 궁정푸얼차의 특징인 듯했다.

가정황제 오채항아리에 그려진 황제를 상징하는 다섯 발이 달린 용처럼 황제의 권위를 황실 차에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황실로 역대의 차를 공급했던 기록에서 보듯이 궁정 차의 특징이기도 했다. 마지막 40년 봉황단총으로 마무리를 지은 뒤 참가한 대중들이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

황병순 전 도의원은 "이번처럼 정적인 식품을 마시면서 동적인 식품을 마신 것처럼 취해 보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한의사인 고명석 원장은 "여러 가지 차를 마셔 본 사람으로 너무 황공하여 어떤 점이 좋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오늘 마신 차는 단순한 차가 아니라 신령스러운 기운을 마신 것이다 . 이 차로 인해 다신의 경지에 오른 것처럼 기쁘다"고 말했다.

정봉순 화순건강보험공간 지사장은 "오직 황제만을 위해 제작된 황실차를 마실 기회를 갖는 것은 생애에 두 번 다시 갖기 어려운 영광이다 450년의 응축된 에너지를 받아 몸이 날아갈 듯하다"고 말했다.

M국장은 "4시간 동안 계속된 이번 품다는 우리 모두의 얼굴을 더 밝게 그리고 마음을 행복하게 해는 뜻 깊은 자리였다. 이는 차에 담겨진 보이지 않는 부드럽고도 신비스러운 기운이 작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품다회에 참가한 대중들은 하나같이 마음을 황홀하게 해주었다고 입을 모았다. 오래된 골동푸얼차는 감평하기가 난해한데 품다회에 임한 대중들은 450년 전으로 떠나 황제가 마시던 푸얼차를 마신 기쁨을 잊지 않았다.













▲ 황실품다회에 전시된 중국황실의 차를 담은 도구들과건륭황제 때 제작된 법랑채 다구세트 도자기와 백옥다구 등의 모습 © 월간 '차의 세계' 제공

한국과 중국의 고대유물수집가인 M국장의 배려로 선정 암에서 황실 품다가 이루어진 것은 9년 전인 2004년 가을 소정 김희용 선생을 통하여 중국황실유물이 입수되었기에 가능했다.

이들 유물은 도광원년까지 중국 황실에서 관리해 오던 것이다. 일제 침략의 흉난기를 거치면서 전설 속에 묻혀 있던 황실 보물창고는 약 10년 전에 발견되어 세상에 드러났다.

황실 유물 중 황제들이 마셨던 차로 중국 청나라 강희황제, 명나라 가정황제 시대의 보배로운 황실유물인 30여 종의 도자기차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수백 년의 적막을 뚫고 이제야 햇빛을 볼 수 있었던 일은 너무나 경이로운 일이다

오늘 황실 품다회는 한국 차 역사를 새롭게 쓰는 사건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스무 번을 우려내도 변함없는 노차(老茶)를 통해 숨겨진 차의 베일이 하나하나 벗겨지는 뜻 깊은 시간이었다.





원본 기사 보기:브레이크뉴스 전남
2013-11-30 15: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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