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의 세상사는 이야기
조정래 선생님께 드리는 「태백산맥」에 대한 질문
icon 박형동
icon 2018-05-25 11:09:33  |  icon 조회: 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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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선생님께 드리는 「태백산맥」에 대한 질문
시인 박형동

안녕하십니까? 저는 지방에서 시를 쓰는 이름 없는 시인입니다. 선생님의 대표적인 소설, 아니 한국의 대표적인 소설 「태백산맥」을 읽고 심취된 독자이기도 합니다. 20대 후반 벌교에서 3년간 교편을 잡기도 했고, 광주로 옮겨온 후 태백산맥문학관을 수차례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저 역시 벌교에 대한 애정이나 그리움이 많은 사람입니다.

저는 「태백산맥」을 읽기 시작하면서 다 읽기까지 한 달을 감동으로 살았습니다. 「태백산맥」은 소설로서 대단한 작품입니다. 예리한 눈과 분석력을 가지고 많은 자료를 발굴해서 아무도 쓸 수 없는 작품을 썼습니다. 특히 오랜 분단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매도되었던 좌익에 대한 긍정의 눈으로 작품을 쓴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였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이 받은 많은 찬사와 대가는 당연합니다.

그러나 저는 「태백산맥」의 그 무엇에 대하여 몇 가지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역사소설은 작품으로서만 읽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독자들의 가치관과 역사관을 형성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역사적 사실에 대한 공정한 시각과 균형 잡힌 구도로 그려가야 할 것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 저는 몇 가지 의문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소설 「태백산맥」은 선악의 대립적 시각으로 양분화 되어 있는데, 좌익은 선, 우익은 악이며, 중간 지역에 있었던 극소수의 김범우, 손승호, 전원장, 심재모, 서인영마저도 결국 좌익으로 흐를 수밖에 없는 구도를 짜고 있습니다. 아울러 중간 영역에 존재했던 상당수의 양민, 즉 소규모 자작농이나 자영업자들이 좌익들로부터 대창에 찔려 많은 살상과 착취를 당한 사실을 외면하였습니다.

둘째, 미국을 제국주의 국가요 악의 축으로 심판하면서도 소련과 중국에 대해서는 한 마디의 비판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중국공산당은 미화시키면서 한국민의 자유와 평화를 위한 미국과 유엔군의 희생과 지원에 대해서는 몇 구절의 긍정도 읽어낼 수 없습니다. 국제사회에서 모든 국가가 자국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 가운데 영국, 프랑스 등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미국의 착취 정도는 심하지 않았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진주한 지역과 소련이 점령한 동부 유럽 지역들을 어떻게 착취하고 압제했는가를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셋째, 좌익 인물들에 대해서는 모두 긍정적으로 그려내고 있으나, 우익 인물들은 한결같이 악랄한 사람들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동시에 우익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는 그것을 예리하고 냉정하게 비판하면서도, 좌익이 잘못을 저지를 때는 그것을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음을 힘주어 변호하고 있습니다.

넷째, 북한의 남침을 은연 중 해방전쟁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북한 인민군의 만행이나 파괴 행위에는 눈감아버리면서도, 미군을 포함한 유엔군과 국방군, 그리고 경찰의 만행은 클로즈업시켰습니다. 또 미 제국주의의 꼭두각시로 폄훼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유엔군의 피 흘림을 범죄시했습니다. 전쟁이 지나간 마당에 피아간 저지른 만행은 비판 받아 마땅하지만, 그것이 객관성을 잃을 만큼 한쪽으로 치우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섯째, 반공주의자들 중에 지주층과 친일세력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순수하게 자유민주주의를 사상적 이념으로 선택한 많은 사람들마저 악질 지주나 친일세력으로 매도하는 것은 옳은 평가가 아닙니다. 또한 전쟁 이전과 전쟁 중에 월남한 사람 모두를 악질 지주나 친일세력으로 본 것도 잘못입니다. 당시에 공산주의냐 자본주의냐는 토지문제와 깊은 관계가 있었음은 사실이지만, 개인적 이해관계를 떠나서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한 사람들도 많았으며, 이들의 반공 애국활동은 우리 역사에 있어서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여섯째, 많은 청소년들이 강제로 의용군으로 끌려가 포로로 잡힌 것과 여러 사정을 보았을 때, 많은 반공포로들이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도, 그것을 강압과 조작으로 그려내고 있으며, 그들이 자유의사에 따라 석방된 것이 잘못된 일이 아님인데도 불구하고, 포로는 상대국에게 송환해야 한다는 일반적 논리로써 한국전쟁의 특수성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일곱째, 좌익과 빨치산의 역사관이 과연 옳은 방향이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소설을 쓴 시기엔 소련이 붕괴되고 동유럽이 자유화 되어 감으로써 공산주의가 몰락하여가고 있었으며, 좌익과 빨치산들이 마지막 순간까지도 신앙처럼 믿었던 세상은 결코 오지 않았습니다. 전쟁이 끝나자 북한이 박헌영을 비롯한 남로당을 미 제국주의 간첩으로 몰아 실패한 해방전쟁의 책임을 남로당과 빨치산들에게 뒤집어씌우는 것을 보고 이해룡이 울분을 토할 때, 김범준의 입을 통해서 정직하게 빨치산의 이상과 투쟁이 잘못이었음을 고백하게 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선택적 결정’이라는 해괴한 논리로 얼버무리고 있습니다.

저는 선생이 이미 무죄판결을 받은 사건을 다시 거론하는 것은 아닙니다. 무죄판결은 정의로운 것입니다. 그러나 법률이 아닌 역사의 시각에서 몇 가지 떠도는 저의 생각을 말씀드린 것입니다. 결국 그들의 꿈은 땅위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환상이었습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세상은 완벽할 수 없습니다. 한 인간 안에서도 많은 갈등과 모순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런 인간들이 모여서 살아가는 세상이 완전한 평등을 이룰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거니와 이 「태백산맥」은 소설로서는 대단한 명작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예리한 역사적 시각에서 출발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묻혀 진 진실과 역사를 파헤치는데 집중한 나머지, 또 다른 진실과 역사를 외면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 대해 무척 아쉽고 가슴 아프게 생각합니다. 선생의 명작에 티를 묻힌 것이 아닌가 걱정하면서도 안으로부터 떠오르는 소리들을 어찌할 수 없어 몇 자 적어보았습니다.

어리석은 저의 생각을 깨우쳐주실 선생님의 답변을 듣고 싶습니다.
다시 선생님의 명작을 기대합니다. 건강하십시오.

(이 글은 2017년 '한국문학인' 봄 호 기획 특집‘명작의 작가에게 보내는 편지’에 실린 글입니다.)

박형동

등단; 1996년 계간 문학춘추로 등단
저서; 시집 『아내의 뒷모습』『껍데기를 위한 항변』등 5권
수상; 장성문학상, 전남문학상, 전라남도 문화상 수상
계좌; 농협 601130-59-068210(박형동)
전화; 010-8270-1023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양일1로 52 대광로제비앙 104-902
2018-05-25 11: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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